Thoughts and Insights
일 잘하고 조직에서 성과내는데 필요한 여러 주제에 대한 생각을 나눕니다.
일 잘하고 조직에서 성과내는데 필요한 여러 주제에 대한 생각을 나눕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한때는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다. 어디서 사도 똑같은 제품인 책의 경우 서점에 가지 않고 거의 온라인 서점 (Yes24, Amazon)에서 산다. 그래서 영화의 프리뷰처럼 최고의 페이지만 모아놓은 ‘미리보기’와 목차, 소개글만 보고 샀다가 실패한 책도 좀 된다. 옷과 신발은 그런 경우가 더 많다. 쇼핑을 많이 하다보니 예전보다 많이 성공률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옷과 신발은 재질과 사이즈, 착용했을 때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 오프라인보다 만족도가 떨어진다.
요즘 가장 자주 들어가서 보는 사이트는 LG패션 온라인 몰인 LFmall이다. 제일모직과 함께 가장 유명한 패션회사라고 하던데 이전 회사에서 모시고 일했던 친한 형님들이 고위 임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의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를 더욱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연말에 우연히 좋은 제품을 아주 좋은 가격에 사고 그 후에도 ‘득템’을 하기 위해 종종 들어가서 보다 보니 쿠폰과 마일리지 행사 등을 자주 한다. 그것도 며칠에 한 번씩, 들어갈 때마다 뭔가 컨셉을 만들어 새로운 제안을 해 주는데 신선하고 좋다. 제 값 주고 산 사람들이 불평할 정도로 잘 보고 있으면 좋은 기회가 종종 온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거의 매일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고 리뷰에 써 있다. 회원들이 꽤나 적극적으로 리뷰도 많이 남긴다. 사이즈나 스타일이 브랜드마다 다르기 때문에 입어 보고 사야 좋겠지만 온라인 몰에서 그러긴 어려우니 상세한 구매 후기를 꼼꼼하게 읽어본다. “아버지한테 사 드렸는데 가볍고 편하다고 하시더라” 등의 리뷰는 더 눈에 잘 들어온다. 2016년 연초에 실시한 16명한테 준다는 아침 10시, 오후 4시에 두 번 주는 16% 할인 쿠폰인가는 KTX 명절 예매만큼이나 빨리 1-2초 만에 매진이 된다. 아예 접속이 안 될 때도 많다. 대단하군. 패션 사이트가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그런데 몇 가지는 개선할 점이 보인다. 아이패드에서 브랜드, 옷 종류 등 세부 선택을 위해 카테고리 선택을 하며 좁혀 들어올 때 화면이 한 번 깜빡 하고 다시 눌러야 하는 경우가 있어 불편하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또 고객 리뷰를 읽다 보면, 좋은 재질의 좋은 상품들에 가격도 좋다며 칭찬하는 글이 많은데, 가끔 품질 검수가 잘 안 되어 배송되었다는 글이 보인다. 포장을 제대로 안 하고 먼지 묻은 상태로 보냈다든가, 누가 입어본 것 같다던가, 주머니에 영수증이 들어있다든가 하는 옷의 기본 상태도 점검하지 않고 출고가 된 옷들이 있다는 글도 있다. ‘이게 내가 한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들어가서 본 이 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로군’이란 생각을 하며 임원 중 한 형님께 알려드렸다. “본사에서만 발송하는게 아니라 전국 각 지점에서 옷을 찾아 보내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하더라고”라는 대답을 듣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러면 고객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 댓글 신고처럼 쉽게 본사로 클레임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주고 그 옷이 어디서 발송되었는지를 추적해서 그런 일이 줄어들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사이트는 이 형님들이 입사하기 전에 만들어진 상태로 아직은 운영되고 있어서 그럴 텐데 좋은 사용성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디지털 세상에서도 ‘고객 서비스’라는 것을 고객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지난 3개월 동안은 20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친한 형님 회사의 전체 임직원 교육을 맡아 다른 일을 제쳐주고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교육을 했다. 평소에도 책을 많이 사지만 이 교육만을 위해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논문집을 20권 넘게 따로 사서 읽고 유료 사이트들과 학술 논문 사이트에서 1천개가 넘는 자료를 다운받고 그 중 100개 정도를 뽑아 전략, 혁신,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변화관리, 갈등관리 등의 주제로 이론과 사례를 공부하고 함께 문제도 풀고 발표와 토론도 했다.
교육을 준비하면서 가장 적합한 내용을 구성하느라 힘든 만큼 교육생들에 대한 기대도 올라갔다. ‘내가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교육생들도 열심히 해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임원 수업이 있던 첫날, 욕심을 내서 좀 어려운 논문을 발췌해 설명하고 숙제도 냈다. 팀장 수업에서는 그보다 조금 낮춰서, 하지만 역시 읽어와야 할 자료를 꽤 많이 나눠주고 매시간 책도 3-4권씩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육생들이 공부를 해 오는 것 같지 않고 자꾸 힘들다고만 한다.
‘평소에 공부를 많이 안 해서 그런 거야. 운동도 3개월 동안 근육 안 보일 때도 해야 하듯, 공부도 이렇게 해야지. 조금만 더 참으면 돼.’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교육 담당자와 미팅을 하며 (매번 교육 후 한 두 시간 미팅을 했었다) 교육생들의 피드백을 들었다. “안 그래도 연말에 매출 목표 맞추느라 야근하고 난리인데 업무 중에 4시간을 빼서 교육을 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왜 사장님 후배가 와서 사장님처럼 우리한테 부담을 주느냐” “너무 공부하라고 하는게 많다” “왜 자꾸 대기업 이야기를 하느냐, 우리가 삼성이냐” 등등 나와 사장님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내가 자주 하는 고민이, ‘이 정도는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나의 욕심과 교육생들이 기대하는 ‘너무 힘들지 않은’ 학습과의 차이를 어느 정도로 조정해야 할 것인가인데 이번에는 내 욕심이 지나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출신 사장님은 더 세게 푸쉬해 달라고 부탁하시고 그렇게 세게 안 하고 나름 힘조절을 했는데도 이렇게 힘들었나 싶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교육이고 뭐고 안 들리니 일단 감싸안고 마음을 풀어드리도록 해 볼게요.”라고 하고 며칠 간 고민을 했다.
이럴 때 모른척 하고 스타일을 약간 바꿔서 힘들지 않게 진행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사장님 후배인 제가 와서 일할 시간도 없는 여러분 엄청 쪼고 공부하라고 해서 힘드셨죠? 이런 이런 마음으로 저는 한 거고, 글로벌 회사, 대기업 이야기도 이런 측면에서 해 드린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스타일을 바꿀거에요. 대기업 이야기 하나도 안 합니다. 제가 전에 잘 했던 재수탱이 이야기 하나도 안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되려고 돈쓰고 고생해서 공부하는 것이니 좋은 마음으로 한 번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굳어 있던 교육생들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뀌면서 훨씬 부드러워지는게 아닌가.
그 후부터 교육이 끝날 때까지 몇 주간은 점점 분위기도 좋아지고 참여도도 높아졌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달렸다더니 역시 마음이 열리고 통하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제는 좋게 받아주고 공부하는 내용도 전달이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끝나고 나서 여러 교육생들로부터 고맙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런 교육은 기대를 안 했는데 너무 많이 배웠다” “지나고 나서 소개해 준 책을 보니 정말 도움이 되더라, 가치를 새롭게 느끼고 한 권씩 보고 있다” 등등. ‘당시에 재미있었지만 남는게 없었다’는 교육보다 ‘그 당시엔 좀 힘들었어도 지나고 보니 정말 많이 배웠다’는 말이 훨씬 보람되고 의미 있는 평가가 아닐까.
처음엔 나도 저항했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내가 이제 인정하게 된 것은, 나의 생각, 아이디어, 비전을 전달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이게(buy) 하려면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고 그러려면 상대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믿어라” 이전 회사에서 너무 실무에 관여하는 나에게 연말 송년회에서 같이 일하는 팀장들이 해 준 이야기이다. 본부장이 팀원들하고 자꾸 직접 이야기하면 중간에 있는 팀장들은 허수아비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미안해요. 내가 성격이 급해서 못 기다려서 그렇잖아. 앞으로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내가 관여 안 해도 될 정도로 알아서 잘 돌아가게 해 주면 내가 그렇게 하겠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내가 늘 옳지는 않지만 내 생각이 맞다는 가정 하에, 리더의 방향을 빨리 이해하고 조직원들에게 알려주고 한 방향으로 나가게 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상황이 심각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나중에 물어보면 실제 팀원들이 전달받은 이야기는 반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 중요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빠질 수가 있나 싶어 할 수 없이 직접 막내 팀원들까지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측근들 몇 명에게는 팀장들에 대한 답답함도 호소하면서. 신기하게도 이런 일은 다시 팀장들의 귀에 들어가고 (아마 팀장들에게 보스와 더 잘 지내라고 좋은 의도로 말해준 팀원들 덕일 것이다) 팀장들은 다시 섭섭함을 토로한다.
내가 친하게 지내면서 이야기도 듣고 조언도 해 드리는 중견 기업 오너 사장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정말 한결같다. “다들 나한테 그만 좀 관여하고 맡기라고 하는데 마음이 놓여야 맡기지. 할 수만 있으면 나도 다 맡기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 예전 회사 생각이 나서, “맞습니다. 저도 이런 마음이었는데 사장님도 그런 마음인 거죠?”라고 하면 “그래. 맞아”하며 정말 반가워하신다. 꼭대기 리더들은 자기만큼 조직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자기 혼자 다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회사들마다 대단한 일을 한 게 없는데도 꼭대기 리더의 마음을 이해하고 편을 들어주는 측근들이 예쁨을 받는 것 같다.
그 다음 해 송년회에서, “내가 작년보다 좀 나아졌나요?”라고 물었더니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자기들도 이제 어느 정도 포기했다고 한다. 그 ‘조금’을 얻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답답함을 많이 참고 기다리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했는데, 근본적으로 바뀐 건 아닌가보다. 하긴 성향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는가.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나와 조직원들, 회사 모두에 그나마 가장 결과가 좋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지.
지나고 보면 내가 리더로서 일했을 때 지나치게 맡겨 놓아서 “너무 방치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도 들어봤고, “너무 들어온다. 좀 맡겨라”라는 말도 들어봤는데 둘 다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다. 늘 조직원들의 불평도 들었고. 나의 지금 생각은, 더 많이 잘 알고 방향을 잘 잡았을 때 내가 목소리를 더 낼 수 있고, 조직원들이 나보다 더 방향을 잘 잡아준다면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리더가 방향을 잡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야이거나 상황이라면, 똥고집 피우지 말고 누구든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리드하도록 밀어 주는게 맞다.
누구한테 이 일을 맡겨야 할지 애매한 상황에서 (서로 안 하려고 할 때만큼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할 때도 어렵다) 내가 묻는 질문은, “이걸 누가 하는게 맞지?”보다는 “이걸 누가 제일 잘 할 수 있지?”였고 명분보다 능력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은 좋은 결과를 내 주었다.
반가운 지인으로부터 카톡 문자가 왔다.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신규 앱을 출시하게 되어 지인 분들께 설치를 부탁드립니다. 이 앱을 설치하시면 추첨을 통해 OO커피를 한잔씩 드립니다. (중략) 추천인 사번을 꼭 입력해 주십시오. 12345입니다.” 이런 문자다. 금융회사가 앱을 출시한 후 프로모션을 통해 임직원들의 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옛날 신용 카드나 새로운 금융 상품이 나왔을 때 임직원 프로모션을 걸어 한 명당 몇 개씩 가입시켜와라라는 방식을 많이 썼었는데. ‘아직도, 디지털 세상에서도 이렇게 임직원들에게 강매하듯 프로모션을 해서 실적을 올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케팅 부서의 한 임원이 “임직원 프로모션 한 번 돌려”라고 말하고 그게 전 임직원들에게 전달이 된 게 아닐까.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지인과 친한 사이이니 이 정도 수고야 뭐 별 거 있겠나 싶어 “알겠습니다. 설치할게요.”라고 답변하고 들어간다.
카톡 메시지에 같이 들어있는 링크를 누르니 설치 페이지로 이동한다. 설치는 쉽다. 설치 후 회원가입 화면에 들어왔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화면이다. 검은색으로 써 있어도 잘 보일까 말까 한 작은 화면인데 메시지가 회색이다. (나는 아직도 손에 쏙 들어오는 아이폰 5를 쓴다)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봐야 보인다. 겨우 입력을 하고 아래 비밀번호 설정을 하려는데 아니, 글자가 안 보인다. 키보드가 ****로 표시되는 비밀번호 입력칸을 가리고 있다. 입력할 때 잠깐 보여주는 알파벳도 없다. ‘뭐야 이거. 맞게 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잘못되면 다시 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참고 입력을 한다. 겨우 입력을 했다. 확인을 누르니 입력한 글자수가 보인다. ‘아, 한 자 더 쳤다’ 다시 입력을 하려 하니 키보드가 한 칸 내려가 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 키보드가 다 나오게 겨우 맞췄다. 입력을 다시 하는데 보니, 기존 키보드와 한 칸씩 다르게 (SDF가 있지 않고 WER 아래 있지 않고 ERT 아래 있다) 입력 실수를 유발한다. 완전 짜증이 나는데 또 참고 확인을 누른다. 마지막 화면, 추천인의 사번을 입력하라고 한다. ‘어? 사번이 뭐였지? 5자였던 것 같은데.’ 아까 문자로 받지 않고 카톡으로 받은 기억이 난다. 카톡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니 입력 화면이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없이 맨 위 왼쪽 화살표 (<-)를 눌렀다. 아까 그 메시지가 보인다. 사번은 알았는데 아까 그 화면은? 다시 처음부터 가입해야 한다. 이제 정말 욕이 나왔다. “이런 OO들. 이따위로 서비스를 만들고 지인들한테 가입을 하라고 하다니!”
처음 알려준 지인의 부탁으로 회원가입을 하려 했는데 서버 에러를 포함해 세 번을 하다 화만 나고 포기했다. “안해!” 화난 상태로 지인에게, “이거 누가 만든 거에요? 테스트도 안 해 보고 이런 걸 해 보라고 하다니 다른 사람들은 짜증 안 내던가요?” 지인이 미안해하며, “죄송해요. 다들 짜증내세요.” 일단 그날은 다시 하지 않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2주 후 그 회사의 다른 지인이 똑 같은 카톡 문자를 보내 부탁해왔다. 몇 번 해 본 경험이 있으니 이번엔 사번을 복사해 놓고 시작했다. 2주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회색 글자, 키보드 문제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겨우 겨우 어렵게 입력하고 회원가입을 마쳤다. 지인에게 회원가입도 이렇게 어려운데 서비스가 어떻게 잘 되겠냐고 꼭 고객 경험을 다시 살펴보시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물론 전달은 안 되었을 것이다.
이게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은행 중 한 군데의 수준이다. 이 회사의 고위 임원은 금융 혁신을 외치는데 실제 고객이 만나는 앱을 만드는 조직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쓰는 화면 작은 아이폰 5에서 회원 가입 기능을 만들고 나서 테스트도 제대로 안 해 본 것 같다. 이래서는 성공할리가 없다.
부탁한 지인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바쁜 시간을 내서 자사의 회원이 되겠다고 들어온 잠재고객에게 이런 짜증스런 경험을 주어 그들이 떠나가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들은 그 회사가 만든 다른 서비스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객의 시간과 관심은 웬만한 돈으로는 살 수 없다. 진정으로 고객을 신경 쓰는 마음과 이런 고민까지 했나 싶은 감동스런 고객 경험만이 살 길이다.
빅데이터, 빅데이터 이 단어도 너무 많이 들으니 이제는 별 느낌이 없을 정도다. 빅데이터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는가?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데이터에 관심이 많았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리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것들에 관심이 많나 궁금해 하다가 TV에서 지난 한 주 동안 가장 인기있었던 키워드 등의 데이터를 보여주니 신기하다 싶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요즘 회사들마다 빅데이터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경영자이건 실무자이건 일을 할 때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결정해야 할 때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던 것을 이제는 데이터, 특히 고객의 행동과 관련된 데이터를 검증해 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빅데이터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고객이 디지털 채널에서 어떤 상품을 검색하고 비교하고 구매하고 반품했는지 데이터를 모아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상품을 언제 주로 사는지, 보긴 하는데 사진 않는건지 등을 실제 고객의 디지털 흔적을 통해 분석하고 미래의 행동을 예측해 제안하려 하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미국 아마존이 이걸 제일 잘 한다.
8년 전, 네이버 가계부를 만들 때 사용자가 작성하거나 카드 사용 내역을 업로드했을 때 모이는 수많은 고객 지출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들이 앞으로 필요로 할 것을 다 제안하자는 아이디어를 회장님께 제안해서 승인을 받았고, 그 후에는 금융 외의 업종에서도 우리가 제일 많이 가지고 알고 있는 디지털 흔적을 분석해 그 데이터에서 나온 의미 있는 통찰을 고객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그 업종 기업들에게도 판매하자는 비전도 제안했다.
요즘 고객사 담당자들과 디지털 분야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윗분들이 빅데이터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잘 몰라서 일단 빅데이터 사업자들을 불러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다들 “우리 솔루션을 사면 됩니다, 비용은 얼마입니다”라는 이야기만 한다고 한다. 물론 빅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어떻게 저장할지, how가 중요하지만, 왜(why), 무엇(what)을 정하지 않으면 정작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데이터를 모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결정은 자신의 비즈니스와 고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고객사가 정해야 한다.
이제 업에 대한 지식(domain knowledge)을 가진 사람이 분석 기법을 배워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고 그 데이터를 쌓고 시행착오를 하면서 가설이 맞는지 해 보고 모델을 또 수정하고 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이제 미국 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데이터 과학 (Data Science), 데이터 분석 (Data Analytics) 등의 이름으로 빅데이터 분석에 대한 교육 과정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R이나 Python 등 관련 통계 패키지나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책과 동영상 자료도 많아졌다.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놓고 “나중에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 말고 고객 스스로도 공부를 좀 하자.
요즘 핀테크를 포함해 디지털 인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좋은 인재를 좋은 회사에 소개해 주면 양쪽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보람되기도 하다. 다만 이 소식을 듣기 전까지.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왔는데 윗분이 이 분야를 너무 모르셔서 정말 말이 안 통합니다.”
“윗분들을 가르치고 설득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써서 정작 혁신에 쓸 에너지가 없습니다.“
“팀장님과 일하는 것은 괜찮은데 팀장님과 부장님이 사이가 너무 안 좋습니다. 부장님께서 디지털을 잘 모르셔서 상무님한테 인정을 못 받으시고, 상무님이 말 통하는 팀장님에게 직접 일을 주시면서 팀장님 부장님 사이가 더 벌어졌어요.”
“저런. 그렇구나. 너 참 갑갑하겠다” 혹은 “좋은 회사 소개해 줬으니 알아서 살아라”라고 하고 전화를 끊기엔 석연치 않다. 중매를 섰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내가 소개해 줬는데 잘 살게 해 줘야지.
“그럼 지금 어떻게 하고 있니?”
“예, 저는 팀장님하고만 맞추고 팀장님이 부장님하고 잘 맞춰오시길 바라고 있죠. 그런데 오늘도 한 판 하셨어요.”
“지금 문제의 근원이 부장님이 이 분야를 잘 모르셔서 헛다리를 짚으셔서 그러는 것 아니냐. 부장님께는 누가 디지털을 좀 가르쳐 드리고 있니?”
“아니요.”
“공부는 따로 알아서 좀 하시나?”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야! 너랑 너네 팀장님은 뭐하는 거야. 가서 부장님 좀 가르쳐 드리면서 이쪽을 이해하게 만들고 아이디어를 같이 가지고 들어가서 상무님을 설득하면 될 것을, 부장님 못 알아듣는다고 불평만 하고 부장님이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또 상무님 만나게 하니까 자꾸 이러는 것 아냐. 팀장님한테 가서 말해. 부장님 좀 가르쳐 드리자고. 그리고 부장님이 모르시니 가르쳐 드리겠다고 하면 자존심 상할 수 있으니 디지털 세미나를 하면서 공부할 건데 부장님도 오셔서 같이 들으시면 어떻겠냐고 해.”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해 볼게요.”
이 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대상이 부장님이건 사장님이건 똑같다. 그 분이 이 분야를 몰라서 일이 잘 안 되면, 알려 드려야 하고, 상사가 공부를 안 하시면 부담스럽게 두꺼운 책이나 자료만 갖다 드리지 말고 (바쁘시니) 꼭 읽어야 하는 내용을 표시해서 그 부분만이라도 읽어보시라고 하고 다시 가서 어땠냐고 묻고 중요한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 드리자. 중학교 졸업 후 갑자기 어려워진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는 학생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의 심정으로, 기운을 북돋아드리며 조금씩 학습량을 늘려가고 좀 더 깊은 내용을 함께 공부하자. 그 분은 늦게 배워 잘 몰랐던 디지털 분야에 대해 새로 눈뜨며 자신감도 찾고 우리 일도 더 잘 돌아가게 지원해 줄 것이며, 자신을 도와주고 가르쳐 준 과외 선생님인 우리에게는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하게 된다. 우리 커리어가 잘 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