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것 같은 서비스를 끝까지 개발해야 할까?

‘분명 이 방향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여태까지 했던 노력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네이버 가계부를 만들었을 때 나와 기획자 팀원, 외부 컨설팅 회사가 함께 아이디어를 논의하며 처음 몇 달을 일했다. 그런데 서비스를 기획할수록 점점 욕심이 생겨 기능을 붙이고 더 붙이고 하면서 나중엔 기업 회계 시스템처럼 모든 수입 지출내역과 금융기관 계좌까지 연동되는 복잡한 서비스로 커졌다. 문제는 서비스가 너무 복잡해지고 기능이 많아지니 전에 이 기능을 왜 이렇게 설계하기로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만든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는 기능을 사용자가 쓸 수 있을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동안 파트너 회사와 기획했던 (아까운) 강력한 가계부를 버리고 (파트너 수고에 대한 보상을 하고) 기획자 팀원에게 그동안 논의된 것을 기반으로 아주 쉽게 서비스를 처음부터 그려달라고 말했다. 그 후 탄생한 네이버 가계부는 사용자 통계 정보나 카테고리별 지출 분석 같은 기능도 있었지만 쉬운 사용성 덕에 사용자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 지인이 막 창업한 스타트업에 초대되어 개발 바로 전 단계인 영어 학습 앱의 기획 마지막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회의에 가 보니 기본적으로는 잘 만들었는데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 사용자 참여에 제약이 있어 의견을 내고 이후 더 많이 관여하게 되었다. 디자인과 개발 인력이 내부에 없어 아웃소싱을 하기로 하고, 디자인도 사용자 경험도 글로벌 인기 서비스의 수준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쓸 수 있는 개발비는 정해져 있는데 실력 있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구하고자 주위 소개도 받아 가며 미국의 개발팀과도 연결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시장은 크지만 경쟁이 치열한 영어 시장에서, 몇 달을 사람들과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민해 보니, 경쟁 서비스와 차별되는 특별한 강점이 없다’는 점이다. ‘일단 핵심 기능만 만들어서 시장에 내 놓고 고객 피드백을 받고 배우며 수정해 나간다’는 린 스타트업 (Lean Startup) 정신이 맞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억대로 드는 개발비를 들여 일단 만들고 나서 아니면 다시 해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급하게 개발을 강행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렵게 창업자에게 개발을 일단 보류하자고 이야기를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큰 돈이 나가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 주어 고맙다고 한다. 원래 하기로 한 분야는 사업성을 재검토하기로 하고 다른 사업 기회들도 알아보고 있는데 한 두 달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때 느낌을 무시하고 개발에 들어갔으면 분명 개발비를 날리고 성과는 별로 안 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좀 다른 케이스지만 반품 수수료가 아까워 마음에 딱 들지 않는데 그냥 쓰기로 한 물건을 결국 별로 안 쓰고 버리게 되어 결국 훨씬 더 큰 낭비를 하게 되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닌 것 같아도 더 큰 손해를 볼 각오를 하고 강행해서 끝을 볼 것인지 (뚝심 있게 하다가 잘 되는 경우도 많다), 정말 원통하고 아깝지만 그동안의 노력과 돈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갈 것인지’는 제품/서비스 개발, 커리어, 주식 투자 등 여러 상황에서 정말 고민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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