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 어떻게 개선하는가?

얼마 전 여러 금융 회사(보험, 카드, 증권, 자산운용사)에서 오신 전략 부서 차 부장급 멤버들을 모시고 디지털 비즈니스에 대한 미니 워크샵 형식의 특강을 진행했다. 두 달 전에 했던 내용에 대해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다시 한 번 와서 심화학습을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처음엔 ‘이렇게 하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반갑기만 했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같은 청중에게, 전에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하는데다, 2시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업무에 도움될 뭔가를 다루어야 하는 상황이라 어떻게 구성할지, 그 동안 읽었던 책들을 꺼내놓고 이 책 봤다, 저 책 봤다 하는데 시간만 가고 정리는 잘 안 되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이분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게 뭘까?’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일은 아니고, 회사의 방향을 짜야 하는 전략 부서 분들이니, 디자인, 개발 등 프로젝트의 깊은 부분을 다루면 업무 관련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해외 선진 사례만 많이 보여드려 봤자 ‘뻔한 얘기네’ 하면서 업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느낄 상황이다.

‘그래, 전략가들이니 전략적 고민을 놓고 그걸 함께 푸는 걸 해 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실제 회사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상황을 놓고 조 단위로 고민하고 발표하기로 했다. 이런 건 많이 해 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동안의 고민들을 보여달라고 했다. ‘고생해서 준비해 왔는데 비슷한 걸 미리 해 봤으면 김새는데’ 하는 걱정을 하면서… 다행이다. 내가 준비한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내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 등장하는 일반적인, 경영학 책에 나오는 멋진 단어들만 몇 개 써 있고 고객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이런 걸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여러분, 이 정도로는 고객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를 만들 수 없습니다. 고객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지요? 제가 준비해 온 서비스 아이디어를 먼저 예로 보여드릴 테니 이 정도로 고민하고 써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고 준비한 5개 아이디어 중 하나를 오픈했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매년 이 회사와 계속 거래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고객이 실제 사고를 당했을 때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불안함을 고객으로 빙의해서 (나도 고객이니까 그 심정을 안다) 이야기하고 ‘왜 이런 걸 안 해 주나?’라고 생각되던 것을 하나씩 서비스로 제안하는 내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이와 유사하게 고민해 달라고 했다.

고민하고 토론할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카드사, 증권/자산운용사 분들도 보험 비즈니스에 대해 꽤나 깊이 고민하고 당장 회사에 제안해 볼 만한 아이디어를 냈고, 업의 전문가인 보험사 분들은 역시나 가장 깊이 있는, 다음 날 바로 프로젝트로 시작해 볼 만한 아이디어를 냈다. 시작하기 전에 봤던 그 동안 많이 연습했다던, 많이 보던 단어들 한 두 개 적힌 혁신 아이디어가 아닌, 고객이 정말로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좋은 아이디어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진정한 고객 가치 사이에서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까지, ‘야, 똑같은 분들이 맞나? 어떻게 30분 만에 이렇게 수준 차이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놀랐지만 오신 분들도 스스로 뿌듯해하며 말씀하신다.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오늘이 제일 빡센 것 같아요.” “예, 저도 이 5가지 아이디어 준비하느라 2주 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습니다.”

중요하다고 요즘 어디서나 이야기하는 ‘고객 경험’을 개선하려면 까다로운 고객으로 빙의해서 그 고객의 삶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라이프스타일, 경제적, 심리적 측면까지 아주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까다로운 고객이 화를 내지 않고 ‘너희가 이렇게까지 하니 내가 참아야지. 고생한다’ 라는 마음이 들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 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서비스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자꾸 연습하면 보수적인 회사들도 얼마든지 혁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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