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리드하는 법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상무님께서는 마케팅 매니저도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 좋은 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나가서 새로 나온 오피스 2007을 팔아보라고 하셨다. 그것도 12월 한 달 동안 50개 파트너사의 영업사원들을 이끌고 200개가 넘는 고객사를 방문해서.

모든 고객사를 직접 다 방문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주요 고객부터 파트너사와 함께 방문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데모를 보여드렸다. 파트너사 영업사원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내가 직접 하기도 했는데 하면서 느낀 점을 영업 일지에 적어 모든 파트너사 직원들과 내부 동료들, 보스들께도 공유해 드렸다.

세일즈에서 중요한 건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혜택‘이라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는데, 고객의 반응을 보며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엑셀 2003 버전은 한 파일에 6만 라인까지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는데, 2007 버전부터는 100만 라인까지 사용할 수 있게 발전했고 이 기능을 핵심 가치로 설명하는 상황이었다.

같이 나간 영업사원은 “고객님, 새로운 엑셀을 사시면 훨씬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6만 라인이 아니라 100만 라인까지 지원하거든요.”라고 말했다. 고객의 얼굴을 살피니 ‘와, 정말? 대단하다. 정말 좋아졌네.’라는 표정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고객이 다루는 엑셀 파일은 6만 라인, 6천 라인도 아닌, 600줄 아니면 60줄 짜리 파일 아닌가. 난 60줄짜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6만도 필요 없어.’라는 고객에게 우리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100만 라인 이야기는 아무 느낌도 주지 못하는 의미 없는 자랑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객님, 100만 라인이 어떤 의미냐면요, 그 동안 고객 데이터를 엑셀로 다운받아서 처리하실 때 데이터가 많아서 6만 라인씩 파일 수십 개로 잘라서 처리를 하다가 데이터를 수정해야 하면 그 파일들을 다 열어서 하나씩 수정하고 저장하던 일을 이제 안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오, 그런 뜻이군요.”

또 다른 고객사의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다 좋은데 새 오피스를 사려면 2억은 들 텐데 너무 비쌉니다.”

내가 말했다. “사장님, 물론 2억은 큰 돈입니다. 하지만 지금 버전의 파워포인트로 고객에게 보여드릴 제안서 만드실 때 디자이너 고용해서 하시잖아요? 조직도나 차트 예쁘게 그리려면 줄 맞추고 하느라고 몇 시간씩 걸립니다. 이번 버전에 새로 나온 스마트아트라는 기능을 쓰면 아마추어가 5분 안에 조직도나 차트를 멋지게 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어 고용하셨던 분들 인건비를 계산해 보면 아마 6개월까지는 손해라도 그 다음부터는 이걸 사서 직원들께서 직접 만드시는게 이익일 겁니다.”

사장님은 계산을 하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다음 주에 견적을 좀 보여주세요.”

고객은 우리 제품의 기능이 뭔지, 뭐가 그리 대단한지 관심이 없다. 고객은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 문제를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해 주려 하는 영업사원, 파트너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프레젠테이션에서 고객인 청중이 중요하듯, 모든 비즈니스에서는 공급자인 내 입장이 아니라 수요자인 고객의 입장에서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제안해야 한다. 고객도 우리가 리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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