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을 안 보면 이제 어떻게 뽑아야 할까?

요즘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단한 이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훌륭한 학점에 뛰어난 외국어 성적 (실제 ‘실력’이 아닌 ‘성적’), 안 해 본 것 없는 것 같은 다양한 경험 등이 많은 선배들을 주눅들게 한다. 그런데 막상 입사 후 보여주는 모습은, (똑똑하고 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허당인 경우가 정말 많다. ‘그런 경험을 다 해 봤다더니 그게 맞나? 그런데 왜 이런 기본적인 걸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 자세히 보면, 온몸으로 느끼며 그런 경험을 쌓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생각해 본 여유를 갖지 못하고 급하게 뭔가를 하고 도장 받듯이 경력만 채워온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도 이런 경우가 많으니 이제 기업에서도 스펙은 믿을 것이 못되고, 뭘 했다는 것만 보여주기 위해 살아온 ‘생각 없는’ 사람들은 뽑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스펙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했다고 하면서 그 일의 의미도 모르고 누가 하라고 하니까 해 온 것이 문제이지, 자신이 원하는 인생, 하고 싶어하는 일과 관련된 경험과 기술의 역사로서의 스펙은 분명 의미가 있고 이것들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채용 시 스펙을 전혀 보지 않고 지원자들이 읽은 책에 대해 써 낸 것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회사의 소식을 들으며 참신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가깝게 사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로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목표나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지원자가 써 낸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사람들이 회사 내에 충분히 있을까라는 점이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가치나 역량을 잘 이해하고 회사에 진정으로 도움될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엔 내부 사람들인데, 외부 전문가들이 글만 잘 정리한 사람들을 대거 뽑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인문학 소양이 뛰어난 교수님들을 채용했다고 해서 회사에 꼭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의문. 이런 사람들을 검증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관리자들부터 갖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매일매일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없는 그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저항과 싸워야 할까, 가능은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고 결국엔 사람이다”, “사람은 잘 안 변하고 변화시키기 어려우니 사람을 키우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고 좋은 사람을 처음에 잘 뽑는 것에 90%의 노력을 기울여라” 등의 말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계속 바뀌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변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potential)이 뛰어난 사람을 어떻게 하면 알아보고 놓치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건 모든 회사, 모든 리더의 영원한 고민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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