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식사를 챙겨라.

조직의 꼭대기로 올라가며 고위 임원이 되면 보통 자기만의 사무실을 받는다. ‘조용하고 아늑한 자기 방이 있는 임원들은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다. 증권회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긴 후, 4년이나 금융 회사에서 일했던 내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나의 보스 상무님이 남들보다 더 고맙고 애틋했다. 상무님은 늘 방안에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 계셨는데, R&D 조직의 분위기는 드러내놓고 보스를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도, ‘상무님 식사 어떻게 하시지?’라고 궁금해 하면서도, ‘점심 약속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간 경우도 있었다. 어느날, 상무님도 약속이 그리 많지 않고, 우리와 같이 가셔야 굶으시거나 혼자 식사하는 일을 면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상무님이 먼저 방에서 나와서 “식사는 어떻게 할까?” 하시는데 후배들이자 부하직원들인 우리가 머뭇거리며 슬그머니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안 되겠다. 상무님이 먼저 나와서 저러시면 되겠나’ 싶어 앞으로는 막내인 내가 식사시간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 ‘식사하러 가자’고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슬슬 나가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때 상무님 방에 가서 “상무님,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여쭤보았다. “응, 가야지.”라고 하시며 따라나오시거나 “응, 약속 있으니 가서들 먹어.”라고 하신다. 내가 챙기니 우리 팀 형님들, 누님들 신경 안 써서 좋아, 상무님도 가만히 계시면 되니 좋다. 나만 조금 신경쓰면 된다. 그 다음엔 방에 가지 않고 전화로도 여쭤봤다. “상무님, 식사는요?” 전화도 똑같다.

어느날, 상무님이 보스인 전무님의 갑작스런 지시로 일을 맡아서 뭘 열심히 하고 계신다. 내가 봐도 오늘 식사는 못 하실 것 같다. 전에야 못 드시겠거니 하고 간 적도 있었겠지만, 내가 챙기는 사람이니 가서 여쭤봐야 하지 않겠는가. “상무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어요?” “응, 오늘은 전무님 시키신 일 때문에 못 가.” “예” 하고 나올까 하다가 마음에 걸려 이렇게 여쭤보았다.

“햄버거라도 사다드릴까요?”

“응, 그래줄래?” 하시며 걸어놓은 양복 쪽으로 가신다. 돈 주신다고.

“상무님, 됐어요.” 라고 말하고 급히 나왔다. 상무님 씩 웃으신다. 고마워서. 이럴 때는 너무 깍듯이 “상무님,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나는 생각했다. 5천원을 주고 햄버거 세트를 사다 드렸다. 많이 고마워하신다.

또 다른 날, 저녁 회식 때였다. 회사 근처의 퓨전 중식 음식점에서 먹고 있는데 상무님은 약속 때문에 다른 곳에 가셨다. 한참 먹다 보니 상무님이 안 계신게 약간 마음에 걸린다. 약속 가셔서 우리보다 더 좋은 음식 드시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늘 같이 먹다가 우리끼리만 먹으니 생각이 난다. “상무님한테 전화 한 번 해 볼까요?”라고 형들에게 물으면 “너 왜 그래?” 그럴 것 같아서 그냥 버튼을 눌렀다.

“상무님? 문병용입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계세요? 저희는 OO에서 저녁 먹고 있습니다.”

“응, 그래.”

혼자만 상무님한테 인사하고 전화 끊으면 아부 같을까 봐, 형들을 다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전화를 받은 형들, 누나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다들 인사를 했다. “예, 상무님. 안녕하세요.”

한 명씩 다 돌려서 전화를 한 후 내가 다시 받아서 말했다.

“상무님, 맛있는 집인데요. 오늘 같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섭섭하네요. 그래도 먹다가 상무님 생각나서 전화드렸어요.”

“그래, 고마워.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상무님, 그럼 비싼 거 먹는다~.”

“허허, 그래. 비싼 거 다 시켜 먹어.”

전화를 끊고 형들을 보며 말했다.

“상무님이 비싼 거 먹으라고 하시네요. 이제 다 시켜 먹지요.”

메뉴 단가가 2배짜리로 올라갔다. 전혀 눈치 보지 않고 평소에 못 먹은 것들도 다 먹었다.

다음 날, 보통 같으면 ‘오, 많이 나왔네.’ 하며 눈치를 좀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수십만원짜리 영수증을 갖다 드렸다. 상무님은 금액도 안 보시고 “어제 많이 먹었냐?” 하며 웃으신다.

뭔가 계산을 하거나 전략적인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 장유유서에서 나온 인정 머리 있는 작은 행동이 이렇게 서로간에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상무님은 자리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식사를 챙기는 나를 특별히 이뻐하셨던 것 같다.

과장 때 이 경험을 하고 직급을 높여가며 아래 동생들이 생겼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 주며 가르쳤다. 가장 기본적인 식사를 챙기라고. 나는 밥을 먹었는데 보스가 일 때문에 식사를 못하고 사무실로 들어오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들 밥 먹었냐?”

“예.”

“알았어.” 하면서 혼자 식사를 하러 가는 보스의 마음은 참 쓸쓸하다.

난 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예, 먹긴 했는데 또 먹어도 됩니다.”하면서 따라나서라고. 가서 안 먹더라도 보스 혼자 시계보며 눈치보며 식사하시도록 놔 두지 말고 디저트 하나 시켜서 함께 먹으며 말동무 해 드리라고.

나도 임원이 되어 보니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나와 밥 먹는 것을 (일 시킬까봐, 평가할까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외부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임원분들도 계셨지만 나는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에 나오기 전에는 내부 사람들을 케어하는데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직원들과 식사를 많이 했다. 약속이 있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밥 먹을 사람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내가 가르친 후배들은 ‘교육이 잘 되어 있어’ “상무님, 가시죠.”하면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점으로 가서 옆에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고 듣는다. 당연히 나도 “야, 밥 먹었어도 이거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잖아.” 하면서 맛있는 걸 권한다.

‘우리 팀장[임원]은 약속도 없냐, 우리 아니면 밥 먹을 사람도 없냐. 맨날 저 사람하고 먹어줘야 하냐.’라고 생각하지 말자. 직원들을 챙기고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친해지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싶어하는 보스들이 더 많다. 보스의 식사를 챙기자. 더 이상 외롭게 혼자 남아있지 않도록. 같이 식사할 사람은 있는지 자주 여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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