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지시에 일단은 “예”라고 이야기하고 생각해 보자.

살다 보면 ‘그때는 하기 싫고 왜 이런 걸 시키나 했는데 할 수 없이 하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 보니 그 때 한 일이 도움이 되었다’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체를 보지 못할 때는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다른 정보를 얻고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눈이 넓어지면 ‘아, 이게 이래서 도움이 되는 거구나’를 알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면, 보스가 시킨 일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일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왜 이걸 하는지,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 못마땅할 때가 많다. 특히 다른 조직에 비해 힘이 약해 보여서 할 수 없이 밀려서 일을 받아온 경우는 적어도 그날은 힘이 없어 우리를 고생시키는 보스가 참 무능해 보이고 얄밉다.

군대 시절, 나는 용산 미군부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내가 하기엔 너무 쉬운 컴퓨터 일이 대부분인 인사 행정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이등병인 내가 할 일은 미군 병장 보스의 일을 보조하는 타이핑 일. 보통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을 나는 2시간이면 다 하고 남는 시간엔 책을 봤다. ‘너무 편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한 날도 있었다.

너무 좋아하면 없어진다고, 이 생활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나를 아들처럼 이뻐해 주던 엄마 같던 보스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미식축구 선수 같은 근육질의 흑인 아저씨가 그 후임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이 아저씨는 가족을 미국에 두고 온 ‘기러기 아빠’였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군복이 터질 것 같은 몸매에 언제나 “예, 알겠습니다” 의 태도로 모든 사람들의 일을 다 걷어다 해 주는, 정말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내 보스가 되었다는 것. 컴퓨터를 못하는 이 아저씨는 컴퓨터와 관련된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도 내게 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보스와 부하는 지시하고 따르는게 당연한 건데, 미군과 카투사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군들의 잘난척 하는 마음과 우리 나라를 약간 깔보는 듯한 느낌, 모국어인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우리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같이 일하는 관계였다. 그 당시 이기적이고 개념이 없던 나는, 하루에 2시간 일하던 생활에서 이제는 이 아저씨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어떤 때는 야근까지 해야 하는 날이 생기니 짜증이 났다.

“문 일병, 이제부터 이 일은 우리가 해야겠다.”

“우리라뇨? 그 일은 우리 부서 일이 아닌데요.”

“아니야, 우리가 하기로 했어.”

“왜죠? 우리가 남의 일까지 걷어서 하니까 다른 부서들이 자꾸 자기들이 하던 일을 던지잖아요.”

“그래도 넌 나랑 일하는 사람이니 그렇게 해야 해.”

“왜 나죠? 난 아저씨 오기 전에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왜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거죠?”

같이 일하는 카투사 동료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될 정도로 매일 “Why me (왜 나죠)?”라는 말을 했다. 아저씨 입장에서도 훨씬 직급도 낮고 어린 녀석이 일을 시킬 때마다 ‘이걸 왜 해야 하냐고, 왜 자기를 시키냐고’ 따지니 나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날만 했다.

한 8개월인가를 매일 말싸움을 하다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야 하는 말싸움을 하느라 이때 내 영어가 많이 늘었다.) 어느 날 아저씨도 참다 못해 말한다.

“뭘 원하냐?”

“하루에 2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보스가 힘들어하는데도 이렇게 이야기한 걸 보면 20년도 지난 지금 생각해도 참 개념없는 쫄따구였다. 대학교도 2년 밖에 안 다닌 때라 그랬나.

아저씨도 서로 피곤한 게 싫으니 “좋다. 그럼 내가 2시간을 보장하고 그 시간 동안은 아무리 급한 일이 와도 내가 하겠다. 대신 나머지 시간엔 잘 도와라.”

“오케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서로 동의를 하고 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아주 쉬운 것도 한참 걸려서 낑낑대며 일하는 아저씨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휴, 내가 하면 5분이면 되는 걸 아저씨가 붙잡고 2시간을 하는 걸 어떻게 보고 있나.’ 신경이 쓰여서 보장해 준 2시간 동안에도 일이 오면 ”이리 줘요” 하고서 금방 해 줬다. 아저씨도 고마워하면서 다른 시간을 더 주고 하면서 서로 동지애가 생기고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때 팀워크가 뭔지를 처음 제대로 느낀 것 같다. 그 다음부터 아저씨가 한국을 떠날 때까지 거의 다투는 일 없이 척하면 척 하고 손발이 잘 맞는 팀으로 일했다. 이 아저씨하고는 몇 달을 으르렁거리다 삼촌처럼 정이 많이 들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가끔 검색해 보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그 후에도 직장에서 몇 번 개념 없는 행동을 하면서 윗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경험이 있어, 개념 없는 행동을 하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 옛날 내 생각도 나서 우습기도 하고 이해도 된다. 철없어 보이는 후배들을 보면, ‘왜 이러지?’ 라는 생각보다는 ‘얘네들도 나랑 비슷하네’ 혹은 ‘얘네들은 나보단 낫네’란 생각이 든다. 뭔가 부당한 것 같고 공평하지 않고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게 손해가 아니고 먼저 좀 퍼 주면 더 큰 좋은 일이 돌아올 수 있다는 (물론 계속 노동 착취만 하는 보스는 주의해야 하겠지만) 것을 이해하려면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며 몇 년은 걸려야 되는 것 같다. 진하게 경험한 경험자의 말을 믿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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