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의 멘토와 친해지게 된 계기

내가 사원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팀에 부장님이 계셨는데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영어도 아주 잘하시는 분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당시, 가장 핫한 디지털 제품은 PDA였다. Palm 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Palm Pilot이란 제품이 1990년대 중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당시, 나는 Palm을 사서 쓰던 얼리 어답터 (Early adopter)들보다는 좀 늦게 2000년에 Palm 보다 훨씬 싸고 기능이 좋았던 Handspring의 Visor 라는 제품을 샀다. 애플의 맥북처럼 주황색, 파란색 등의 예쁜 색상을 가지고 있으며 확장 슬롯에 끼우면 여러 기계로 변신하는 이 제품을 사서 지금 아이폰을 쓰듯 모든 것을 기록하고 씽크 (synch, 동기화) 했다. 그 당시 가장 비싸고 고급 기종은 Visor의 2배 정도 가격인 50만원 정도의 Palm Pilot V 제품이었다. 보급형 Palm Pilot의 플라스틱과는 다른 금속 재질의 얇은 제품, 보기만 해도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있어 보이는 이 제품은 내 기준으로는 너무 비쌌다.

내가 늘 Visor를 꺼내 뭔가를 적고 누르고 하고 있는 걸 보신, 디지털 기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부장님, “그건 뭐니?”라고 물어보신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창피할 수도 있는 이 순간에 훨씬 아랫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보신 윗분들에게 “예, 이거 PDA 라는 거에요.”라고 한 마디 하고 입을 닫을 수도 있고 (이러면 윗분들은 더 묻지 않으시고 10초 정도 더 구경하다가 멋적어서 가신다.)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해 드릴 수도 있다. 난 “예, 이게 PDA 라는 건데요, 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 디지털 비서에요. 여기엔 스케줄, 연락처, 메모, 이메일 등을 저장할 수 있고요, PDA용 소프트웨어가 많아서 다운받아서 설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죠.”

“아, 그래? 야, 신기하다. 뭘 할 수 있는지 좀 보여줘봐.” “가격은 어느 정도야?”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하는 회사의 제품도 아니지만 영업사원이 된 것처럼,

“예, 이런 이런것들을 할 수 있고요, 제가 쓰는 건 250불짜리인데요, 부장님은 이런 것 말고 아주 멋진 제품이 따로 있어요. 500불 정도 하는데요, 부장님은 그걸 쓰셔야 해요.”

“그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좀 알려줘.”

부장님은 미국에 주문을 하여 가장 고급 모델을 주문했다. 부장님의 최첨단 PDA는 언제나 너무 멋졌고 나는 그것보다 두 배 싸고 두 배 두꺼운 내 기계를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좋은 제품이라며 사랑했다. 난 유료 앱은 쓰지 않았는데 부장님은 며칠에 한 번씩 유료 앱을 사시고 가끔씩 이런 앱도 있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어느날 보니 부장님이 PDA를 더 많이 쓰고 계신게 아닌가.

“부장님, 유료 앱을 수십개나 사셨네요?”

“응, 이런 앱도 있더라.”

“부장님, 주위에서 PDA 쓰시는 친구분 없으시죠?”

“없지. 다들 뭐냐고 신기해 하고 대단하대. 문병용 씨 덕분이야.”

이제 하산하실 때가 되었다. 더 이상 가르쳐 드릴 것도 없고, 도움도 필요 없는 수준이 되셨다. “이제 부장님이 더 잘 아시네요.” 나보다 12 살이 많은 (띠동갑) 학생을 하나 키워낸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하다.

이후로도 부장님은 때때로 이렇게 좋은 세상 (PDA와 디지털의 세상)을 알게 해 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이나 하셨다. 이후 부장님은 내 인생에 많은 좋은 영향을 미친 Toastmasters를 소개해 주셨고, 우리가 처음 만난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중요한 결정을 상의하는 내 평생의 멘토가 되셨다.

친구 뿐 아니라 보스와도 좋아하는 관심사나 취미가 같다면 가까워지고 좋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 회사에서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쿨하게 일만 하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정을 중시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나라 직장에서는 ‘일은 잘 하는데 뭔가 불편하고 연결이 안 되는’ 느낌을 줘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보스와 일 이야기만 하지 말고 뭘 좋아하시는지, 뭐에 관심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보스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보스가 필요한 것도 알려드리고, 보스한테 배울 것도 배우면 얼마나 좋겠나. 운동이든, 술이든, 차 (car)든 좋다. 따로 공부해서까지 맞춰주라는 건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주변에서 보스에게 도움이 될 정보나 지인, 행사 등 리소스가 있으면 소개하고 알려드리자.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기억해 준 것을 고마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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