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닌 일을 자꾸 시키니 하기 싫어요.”

‘날 뭘로 보고 이런 시시한 걸 시켜. 별 거 아닌 일이니 대충해서 줘야지’라고 마음먹고 일을 하면 일을 시킨 상사도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 상사도 젊었을 적이 있었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과정에서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지 꿰뚤어볼 내공도 쌓았다.

상사의 입장에서는 잘못되면 안 되는 중요한 큰 일을 처음부터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줄 수는 없다. 몇 번 작은 일, 중간 크기의 일을 시켜보고 어떤 일이든 늘 최선을 다해 잘 해 오는 팀원에게 큰 일을 맡기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부서 행사 준비를 맡았다고 하자. 평가기간에 실적으로 잡히지도 않는 일이라 부서에서 아무도 안 맡으려고 하는 일을 할 사람이 없어 내가 맡았다. 여러 사람의 각기 다른 요구를 듣고 반영하고 다른 의견을 중재해야 하는 일이라 중요하게 대접은 못 받는데 눈에 안 보이는 일은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자기 혼자만 잘 하면 되는 일에서 배우지 못하는, 여러 이해관계와 고려할 사항이 있는 일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일을 할 때 필요한 스킬을 배우게 된다. 더구나 이 일을 맡긴 여러분의 상사는 대부분의 경우 워크샵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한지 알고 있으며 이번에 여러분이 그 일을 배우길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일부러 생고생만 시키고 서로 원망하는 사태를 바라는 보스가 어디 있겠는가.

나도 회사를 옮긴 후 얼마 되지 않아 100여명이 가는 워크샵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아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일로 성과를 보이기 이전 맡은 ‘다른 종류의 일’이라 어쨌든 일을 주신 보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진행요원을 10명 선발하고 일을 배분했다. 장소 섭외부터 가격 협상, 시간별 프로그램, 배차, 식사, 술자리, 다음 날 피드백, 보스의 인사 말씀까지 (쑥스러워하셨지만 꼭 하셔야 한다고 주장하여 했더니 다들 좋아했다). 뭔가를 배우는 프로그램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섞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통일하지 않고 2개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진행요원을 나눠 배치했다. 1박 2일짜리 워크샵 (사실 만 하루짜리) 동안 진행요원들과 전화를 150통 주고 받고 했으니 정말 계속 뭔가를 챙기고 바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참석한 동료들도 아주 재미있었다고 해 주었고 워크샵 준비를 맡긴 보스께서도 아주 흡족해 하셨다. 내가 고용되어 할 원래 일과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만 디테일한 준비와 실행 과정을 보시고 나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배우 에디 머피가 아프리카의 ‘자문다’라는 국가의 왕자로 나오는 ‘구혼작전(Coming to America, 1988)’이라는 영화에는 이 왕자가 신부를 찾기 위해 미국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다 줘버리고 햄버거 식당에서 일하면서 걸레로 식당 바닥을 청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장님은 보통 허드렛일이라고 여기는 걸레질을 즐겁게 열심히 하는 이 청년을 눈여겨보고 키워주게 된다. 별 거 아닌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재미도 생기고 잘 하게 되고 그 모습에 감화된 주위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던 ‘중요한’ 일을 부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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