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겸손해야 할까? – 스피커의 권위가 필요할 때

3년 전, 처음으로 KAIST MBA에 특강을 부탁받아갔다. 최고의 MBA 프로그램에서 초대를 해 주신거라 으쓱하기도 했고 후배들 (난 MBA는 아니고 공학 석사를 했다)을 만나 내가 했던 경험을 나눠주며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생각을 하니 신나기도 했다. 주제는 MBA 학생들이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커리어 전환’. 내 전공 아닌가. 해 줄 이야기도 많고 자료도 꼼꼼히 만들었다.

어떤 학생들일까 잔뜩 기대를 품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MBA Director 선생님의 내 소개가 끝나고 인사를 했는데도 뒤에 앉아 있는 두 줄 정도의 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거의 뒤로 누워 있는게 아닌가. 얼핏 보니 나이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음. 사회경험을 할 만큼 한 사람들이 좀 예의가 없군. 그래도 선생님이 왔는데,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청중들을 만나봤지만 ‘우리도 알만큼 알아. 근데 넌 뭐냐?’ 하는 사람들과 ‘다 귀찮아. 듣기도 싫어. 나 할 수 없이 여기 와 있는 거야.’ 라며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두 번째 모든 것이 귀찮아진 분들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학생들은 첫번째였다. 이때 잘 해야 한다. 처음에 기에서 밀리면 강의를 제대로 안 들으니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되어 효과가 없다.

‘이것들 봐라, 좀 충격을 줘야겠네.’라고 생각하고, “여러분, 저는 여러분 선배입니다. 여러분 카이스트 MBA 나오면 다들 어셔옵쇼 하면서 문 열어줄 것 같죠?” 후배들이 집중한다. “웃기지 마. 그런 건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 아무 것도 개런티되는 건 없어.”라며 학생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누워있던 학생들이 팔짱을 풀고 다 똑바로 앉는다. ‘음, 이제 수업해도 되겠군.’

난 모든 강의에서 내 소개를 좀 거창하게 한다. 교수를 하는 친한 친구가 10년도 전에 “강의할 때는 선생님의 권위를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을 기억하고 다른 교수님들의 케이스도 몇 번 보고서 나도 그렇게 한다. 내가 일했던 회사들, 했던 일들, 내가 성공시킨 사람들이 합격한 최고의 회사들, 학교들의 리스트, 내가 강의하는 유명 무대의 사진들, 신문에 나온 사진, 미국 가서 CEO한테 상받은 사진 등을 보여준다. 시간이 5분 더 걸려도 청중들이 집중해서 얻는 효과에 비하면 투자할 만하다. 내 소개를 듣고 나면 다들 눈을 반짝거리며 집중한다. 한 번에 못 알아듣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야기도 해 준다. “자, 이제 이 선생님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겠다 생각이 들죠?” “예!” “여러분, 난 여러분들을 위해 정말 많이 준비했고 오늘 많은 걸 가르쳐 줄 거에요. 오늘 여기 와서 날 만난 걸 땡잡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잘 들으세요.” 이렇게 하고 수업을 하면 집중도가 좋아서 나도 신나고 더 가르쳐주게 되고 학생들은 더 많이 배우고 강의 평가가 잘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카이스트 MBA 수업도 처음 분위기를 잘 잡고 하니 수업 내내 잘 듣고 날카로운 질문도 많이 나왔다. 질문을 받을 때도 ‘다 덤벼’ 하는 마음으로 “Any questions?”라고 묻고 나온 질문에는 똑바로 쳐다보고 자신있게 대답해줬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해 전체 외부 강의 중 1등을 했단다. 그 이후로 매학기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커리어 전환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간다. 재미있게도 그 이후로 팔짱끼고 누워있는 학생들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요즘은 그보다 훨씬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분들이 겸손의 미덕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전문성을 보여주고 권위를 세워 집중을 받아야 할 시점에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스스로 알겠거니 하고 말을 아낀다. 청중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그냥 누가 왔나보다 생각하고 잘 듣지 않는다. 대단한 분을 어렵게 모셔와놓고 제대로 안 들으니 효과가 반감되고, 그 분은 이 청중들과의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이 학교[혹은 회사]에 다시 오지 않는다. 서로 손해다.

겸손할 때 겸손하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알려야 할 때는 확실하게 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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