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리더로서 고민될 때

20년도 지난 1990년대 초,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운이 좋아 사람들이 선망하던 좋은 환경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미군들과 용산에서 근무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부대 2군데 중 하나) 고참들(선임병들)도 다들 모범생으로 살아온 순한 분들이었고 괴롭게 하는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 막내로 몇 달 지났는데 어느날 쫄따구(후임병)가 온다는게 아닌가. 어떤 녀석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고생도 안 했지만 그래도 막내 부담이 없어진다고 하니 같이 있던 동기와 나는 마음이 들떴다.

새로 온 친구도 명문대를 다니다 온 똘똘하고 순한 녀석이었다. 다음 날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하나 챙겨주고 불편한게 없는지 신경을 많이 써 줬다. 그런데 이 친구가 너무 오냐오냐 자랐는지 (집안이 좋다고 듣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눈치가 없고, 진지해야 할 상황에서 장난을 치고, 고참들에게도 존댓말을 완전히 쓰지 않는 것이다. 고참들한테는 “제가 ~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늘 “내가 ~” 라고 하는 것이다. 다들 좀 거슬리긴 하는데 대단히 큰 문제도 아니고 저러다가 알아서 고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안하고 몇 주가 지났다. “걔는 그런 걸 못 배웠나보다. 가르쳐 주자”란 의견이 나왔지만 이렇게 몇 주가 지난 후라 몇 명 되지도 않는 부대에서 괜히 분위기만 쌩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하다가 최고 고참들을 제외한 몇 명의 고참들과 내가 이야기를 해 줬다. 고참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제가 ~”라고 이야기하는  거라고.

분명히 여러 명이 이야기를 해 줬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다. ‘왜 이러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내가 이야기도 가장 많이 해 줬는데 건성으로 들은 건지 바뀔 생각이 없는 건지. 한 두 주가 지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얘는 포기하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들인 노력이 있는데 끝까지 이야기해서 고쳐보자 했던 나도 이 친구를 불러 싸늘하게 이야기했다. “OO야, 이제 우리는 너를 포기한다. 내일부터 네 마음대로 살고 말도 네 마음대로 해라.”

다음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 녀석이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 깍듯한 존댓말에 군기가 바짝 들어 고참들을 잘 모시는게 아닌가. 마지막 남은 사람마저 자기를 포기하면 혼자가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었나 보다. 그 후로 우리는 새로운 후임병들이 오면 적어도 첫날은 군기를 잡아서 예절을 가르치기로 하고 내가 저승사자의 역할을 맡아 신병을 pickup하러 갔다. 우리 부대 문화는 후배들을 괴롭히는 문화가 아니지만 첫날만은 ‘흰 벽을 보고 몇 시간 동안 서 있게 하고 뒤에서 감시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난리를 치는’ 무서운 ‘의식’을 거행했다. 다음 날부터는 잘 대해주고 제대할 때까지 다들 형동생처럼 친하게 지냈는데 가끔 이 녀석들 안 되겠다 하면 말없이 눈빛만으로도 그날의 악몽을 떠올려 기강이 잡히게 했다.

군대에서의 여러 사건은 내 성격, 생각, 행동, 진로 등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 일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내가 그때 알게 된 것은,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고, 함께 생활하며 문제가 있으면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리더일 때는 꼭 알게 해야 할, 가르쳐야 하는 것들은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심지어 나를 싫어하게 될지라도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는 것. 리더는 인기투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까.

PS. 그 친구는 그 후 태도도 많이 좋아지고 (거의 개과천선 수준) 제대 후 공부도 열심히 해서 외무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내게 배운 컴퓨터 지식도 추가 점수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다.

3 replies
  1. Serena
    Serena says:

    많이 공감하고 가요,,
    저도 후배들한테 잘 해주는 편인데,, 어떨 땐,, 돌아오는 피드백이 잘해줄 수록 더 바라기만하는구나 싶은,, 그런 행동이 종종 나와서,, 아차했던 적이
    타산지석으로 삼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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