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 점점 줄어든다.

직장에 소속이 되어 일을 하든, 자기 일을 하든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을 누구와 어디에서 하게 될지는 매우 관심 가는 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일의 미래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는데 인구, 사회, 기술 등의 변화 등으로 오게 될 변화들에 대해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론에서 늘 청년실업, 중장년실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희망적인 미래보다는 현재보다 더 어려워지는 미래를 예상하는데 실제로 주위에서 봐도 예전처럼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가늘고 길게’ 버티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회사에서도 가장 잘 나가던 사람들도 50 전후에 임원이 되었다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몇 년 후 더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사를 떠나게 되고, 회사는 임원이 되길 포기하고 부장으로 오래 회사를 다니고 싶어했던 고참 부장들의 신분을 계약직 부장으로 바꿔버린다.

우울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트렌드는 앞으로 점점 정규직의 자리는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들은 정규직 직원들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싶어하고, 길게 줄 서 있는, 언제나 와서 일하겠다는 계약직 혹은 파견직 직원들로 예전 정규직의 자리를 채운다. 매일 필요하지 않은 대부분의 일은 필요할 때마다 회사 밖의 파트너 회사들에게 아웃소싱을 통해 맡긴다. 동료 직원이 맡아서 할 때는 일이 좀 마음에 안 들어도 심하게 대하기 어려웠는데 아웃소싱 회사들은 ‘을’이니 겁을 주면서 똑바로 하라고 한다.

미국의 오데스크나 이랜서 같은 프리랜서들의 플랫폼을 이용하면 예전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내가 필요한 일을 맡길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의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려고 하면 예전에는 아는 사람을 추천받거나 인터넷에서 제작회사를 찾아서 계약을 했지만, 이제는 시간당 비용은 얼마인지 결과물이 내 스타일인지도 살펴보고,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의 평가를 읽어본 후 인도에 있는 개발자와 미국에 있는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정규직이 줄어들고 전세계 누구와도 일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평범한 제너럴리스트는 설 자리가 없고 깊이 있는 지식과 능력,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것을 쌓은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실제 능력도 있어야 하고 자신의 능력이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잘 보여줘야 한다. 이런 무한경쟁의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으며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규직 포지션에 너무 목숨걸지 말고 자신의 경쟁력을 어느 분야에서 쌓을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정말 하기 싫던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때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고객사에 나가 한참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태국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네가 적임자인 것 같으니 가서 참여하면 좋겠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이야기였다. 결혼한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신혼인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해외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을 보내시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며칠 있다 다시 전화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공이나 기술 (데이터베이스와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와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내가 딱이니 가라는 말이었다. ‘에이, 회사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나밖에 없겠어?’라는 마음 약간에, ‘내가 그런 후진국에 가서 프로젝트를 해야겠어?’라는 생각을 하고 한 번 더 고사했다. 세 번째 전화가 왔지만 그 당시 어떤 프로젝트에 죽어도 못 가겠다고 세 번 말하면 여간해서는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던지라 너무하지 않냐며 마지막으로 버텼다. 약간 짜증도 나고 이제는 연락 안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한 주의 일이 끝나고 프로젝트 팀원들끼리 회식을 하던 금요일 저녁,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무리 찾아도 너밖에 없으니 내일(토요일) 비행기표 알아서 구해서 월요일 오전 태국에 출근해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저녁을 먹다가 ‘야, 우리 회사는 정말 사람들 신경 안 쓰는구나. 이런 회사에 계속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회사 내 형님들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형님들의 말씀은, “일단 회사의 명이 왔으니 태국으로 가고 그 다음 생각을 해라. 어떨지 모르잖냐” 였다. 본사에 전화를 해서, 플라이백 (flyback) 항공권 (3주에 한 번씩 집에 돌아올 수 있는 항공권을 준다)을 아내에게 보내 태국에서 같이 있으면 안 되겠냐 했더니 그러라고 한다.

처음 몇 주는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 나라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늘 친절하고 미소 짓지만 일을 빨리 처리해주지는 않는 사람들 때문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다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그들의 역사, 종교, 생각을 이해하게 되면서 행동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중간에 날아온 아내와 태국의 유명한 유적지를 다니며 구경했다. (아직도 아내는 태국에서의 몇 개월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라고 이야기한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 나라와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과 느낌을 갖고 돌아왔다. 처음 생각했던 ‘후진국’ 태국에서 우리 나라보다 훨씬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보았기에 이제는 동남아 나라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나라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정말 잘 산다. 평균적으로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살면서 누가 뭘 해 보자고 했을 때 별로 좋지 않아 보여 피하려고 했던 일들을 피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하다가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 생겼던 경험을 몇 번 더 했다. 이제는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 다가오면 피하지 않고 뭐가 또 잘 되려고 오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몸을 맡길 때가 많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어떤 길을 갈지 고민이 될 때는 최선을 다해 노력은 하되, 애써 피하려 하지 말고 좋은 운을 믿고 맡겨보는 것도 좋다.

“앞으로 제가 많이 괴롭혀 드릴 거에요.”

강의에서 만났거나 누구 소개로 처음 만난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생글거리는 젊은 친구들을 종종 보게 된다. 좋은 의도로 친한 척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이 이야기를 듣는 내 입장에서는, ‘아, 얘가 앞으로 날 얼마나 귀찮게 하려고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쁜 짓을 많이 한, 잘 아는 후배라면 괴롭혀도 기꺼이 참아줄 수 있지만, 인간관계도 없었던 사람이 자기를 위해 나를 귀찮게 하겠다니 “예”라며 웃음을 짓긴 하지만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감사인사도 하지 않으면서 도와달라고 나를 수시로 괴롭히고 귀찮게 했다.)

반대로 아주 훌륭하게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5년째 KAIST MBA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얼마 전 강의에서 만난 기특한 친구가 있다. 강의 후 SNS에서 친구를 맺고 follow-up을 하면서 안부를 묻는 후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친구는 정말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감정의 계좌에 입금을 한다. 정기적으로 안부 메일을 보내는 것은 물론, 내 일에 도움이 되거나 내가 관심 있어 할 만한 분야의 좋은 글, 기사를 보내주기도 하고 학교에 찾아오신 유명 CEO의 강연을 녹음해서 보내주기도 한다. 졸업할 때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가 성공하는데 필요한, 내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줄 생각이다.

인간관계가 완전히 동등한 경우는 별로 없고 누가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는지가 상황마다 다르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일 때도 있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때라면 “조금만 도와주시면 된다”고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이야기를 하자. 상대는 조금만 도와주려 했다가도 내 노력과 정성의 여부에 따라 기특해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반대로 그가 바쁜지, 기분이 어떤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고 보따리 내놓으라고 예의도 갖추지 않고 계속 요구만 하는 사람, 처음 만났는데 앞으로 많이 귀찮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귀찮고 힘들더라도 기꺼이 시간 내주고 이야기해 주고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이야기하고 행동하자.

스펙을 안 보면 이제 어떻게 뽑아야 할까?

요즘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단한 이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훌륭한 학점에 뛰어난 외국어 성적 (실제 ‘실력’이 아닌 ‘성적’), 안 해 본 것 없는 것 같은 다양한 경험 등이 많은 선배들을 주눅들게 한다. 그런데 막상 입사 후 보여주는 모습은, (똑똑하고 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허당인 경우가 정말 많다. ‘그런 경험을 다 해 봤다더니 그게 맞나? 그런데 왜 이런 기본적인 걸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 자세히 보면, 온몸으로 느끼며 그런 경험을 쌓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생각해 본 여유를 갖지 못하고 급하게 뭔가를 하고 도장 받듯이 경력만 채워온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도 이런 경우가 많으니 이제 기업에서도 스펙은 믿을 것이 못되고, 뭘 했다는 것만 보여주기 위해 살아온 ‘생각 없는’ 사람들은 뽑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스펙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했다고 하면서 그 일의 의미도 모르고 누가 하라고 하니까 해 온 것이 문제이지, 자신이 원하는 인생, 하고 싶어하는 일과 관련된 경험과 기술의 역사로서의 스펙은 분명 의미가 있고 이것들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채용 시 스펙을 전혀 보지 않고 지원자들이 읽은 책에 대해 써 낸 것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회사의 소식을 들으며 참신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가깝게 사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로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목표나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지원자가 써 낸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사람들이 회사 내에 충분히 있을까라는 점이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가치나 역량을 잘 이해하고 회사에 진정으로 도움될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엔 내부 사람들인데, 외부 전문가들이 글만 잘 정리한 사람들을 대거 뽑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인문학 소양이 뛰어난 교수님들을 채용했다고 해서 회사에 꼭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의문. 이런 사람들을 검증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관리자들부터 갖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매일매일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없는 그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저항과 싸워야 할까, 가능은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고 결국엔 사람이다”, “사람은 잘 안 변하고 변화시키기 어려우니 사람을 키우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고 좋은 사람을 처음에 잘 뽑는 것에 90%의 노력을 기울여라” 등의 말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계속 바뀌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변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potential)이 뛰어난 사람을 어떻게 하면 알아보고 놓치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건 모든 회사, 모든 리더의 영원한 고민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