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는 외롭다.

큰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 수록 사람들이 나를 멀리한다. 내 힘이 세지면 세질수록 나에게 잘못 보였을 경우 본인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누구한테 이야기하나. 윗 분에게 상의했다가 “너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라는 이야기나 듣고, 아래 조직원들에게 이야기하면 “뭔가 문제 있나봐. 우리도 살 길 찾아야 하는 거 아냐?”라며 동요하고, 옆 동료에게 이야기하면 “너네 조직 문제 있다며?”라는 칼이 되어 돌아온다. 임원 되어 보니 정말 속마음을 말할 사람이 없더라.’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그래서 아무 이해 관계 없는, 회사 안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는 옆 본부장 형님도 봤다.

내 사무실 방문을 1년 365일 활짝 열어놓아도 사람들이 잘 안 온다. 내가 몇 년씩 데리고 같이 일한 조직원들인데, 난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날 달리 대한다. 어려워 한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웃는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방에서 나가면 조용~하다. (물론 내가 너무 알려고 하고 개입해서 해결해 주겠다며 간섭하고 일을 키우니 입을 닫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폰 연락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넘겨봐도 술 한잔 하자고 지금 나오라고 부를, 만만한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팀장님도, 상무님도, 전무님도, 부사장님도, 사장님도 그 레벨만 다르지 올라갈수록 책임감과 함께 고독함과 외로움이 더욱 심해진다.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잘 들어주고, 때로 100% 동의는 안 해도 내 편을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 주는, 다음 날 조직에 소문나지 않을까 염려 안 해도 되는 후배가 있다면, 언제든 마음이 울적할 때, 너무 기분이 좋을 때 이 친구가 나와준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큰 힘이 될 거다.

‘뭐야, 맨날. 이 사람들 지겹다, 지겨워.’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그래도 우리 보스가 힘들어하니 들어주자’라고 생각했던 중간 관리자 시절을 거쳐, ‘우리 형님이 내가 필요하다는데 이 정도 못 해 주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보니 몸은 더 피곤하지만 보스가 일 잘 하게 되고 나도 일 잘 하게 되고 서로 상처 줘도 좀 봐 주게 되고 마음이 좋다. 보스가 힘들어 보이면 이런 후배로 다가가 보자. 결과가 좋으면 계속 하고 아니면 그만 하면 된다.

‘보스가 할 일을 왜 내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팀장이 할 일과 팀원이 할 일이 뭔지는 꽤 분명히 알 수 있다. 문제는 둘 중 한 사람이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고 있을 때이다. 팀원이 제대로 안 하고 있을 때는 팀장이 일을 가르쳐서 하게 하면 되는데 팀장이 할 일을 안 하고 있으면 “팀장님 일을 왜 안 하십니까?”라고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그때는 할 말을 했다고 통쾌한 생각이 들어도 회사에서 상사에게 그런 말을 한 후 무사하긴 쉽지 않다 (이건 예절과 위아래가 중요한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보스가 게을러서, 하기 싫어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혹은 알아도 할 능력이 없어서 아랫 사람들에게 시킬 때가 있다. ‘나는 운도 지지리도 없지, 남들은 다 능력자 보스들과 일하는데 왜 나만 맨날 능력도 리더십도 없는 보스랑 일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부터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보스가 못하면 내가 해 주면 되지. 어차피 보스를 당장 바꿀 수도 없는데. 보스 일을 내가 걷어와서 하면서 미리 한 단계 높은 자리의 일을 경험해 보자.’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지원해서 하든 마지못해 맡든 보스의 일을 자꾸 받아와서 한 사람은 동료들보다 한 단계 위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 보스의 후임을 뽑을 때 조직에서 첫번째로 승진시킬 대상이 된다. 모든 일엔 결과가 따른다. 고생하며 배우고 익히면 돌아온다.

뭔지 모르겠는데 상사에게 뭔가 잘못한게 있는 것 같을 때

별 말이 아니었는데 팀장님 얼굴빛이 안 좋다.

“팀장님, 제가 무슨 말 실수를 했나요?” 글자 그대로 보면 잘못된 게 없다. 그런데 ‘실수’라는 단어를 듣고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똑같은 상황에서 “팀장님, 제가 뭘 잘 모르고 뭔가 잘못한 것 같은데 가르쳐 주시면 고치겠습니다.”라고 하면 좋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걸 고쳐라”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거 없어”라고 해도 기분이 안 풀린 것 같으면 끝까지 따라가서 몰라서 그렇다고, 알려주셔야 제가 좋아진다고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럼 잘 들어봐. 아까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좀 기분이 안 좋더라고.”라고 이야기해 준다. 듣고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데 이런 걸로 불편하셨구나 생각하고 꼭 기억해 놓고 다음에는 절대로 안 해야 한다.

귀찮아서, 아니면 ‘나도 기분 나빴으니 자기도 좀 기분 나빠보라지’라는 생각에 상사와 불편한 상황을 보낸 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간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간 것 같지만 상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 봐라,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와서 미안하다고 안 하네’라고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스트라이크 원’이라고 표시해 놓는다 (세번이면 삼진아웃). 영화에서도 아주 작은 일 하나로 조직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던가. 실제 조직생활에서도 그렇다. 특히 금요일에 뭔가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절대 상사가 그 기분으로 주말을 보내게 하지 말고 금요일 저녁에 기분을 풀어드려야 한다. 잘못을 했더라도 미안해 할 줄 알면 용서가 된다.

피드백을 받고 싶을 때

“제가 어떻게 일했는지 피드백을 받고 싶습니다.”라며 당차게 요구해 오는 젊은 후배들 이야기를 듣는다. 젊은이들이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건 좋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상황에서는 (보스가 피드백을 해 주는 것이 맞다고 하지만 안 해 줘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당당함보다는 공손함이 필요하다. ‘내 능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모시는 보스 당신의 일이 더 잘 되도록 하기 위해’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보스가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실제로는 내게 도움될) 피드백을 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어야 적극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나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내가 피드백을 잘 받고 (좋은 피드백이건 건설적인 피드백이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 아닌가. 그게 내게도 보스에게도 조직에게도 좋은 일이다.

또 “제가 어떻게 일했는지 피드백을 요청드립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요청(request)’이란 단어는 맡겨놓은 물건을 달라고 하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해 보자.

“팀장님께 제가 잘 서비스해 드리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부족한 점이나 괜찮은 점을 말씀해 주시면 고치고 더 잘 하겠습니다.” 훨씬 듣기 좋고 하나라도 더 배우게 될 것이다.

보스의 지시에 일단은 “예”라고 이야기하고 생각해 보자.

살다 보면 ‘그때는 하기 싫고 왜 이런 걸 시키나 했는데 할 수 없이 하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 보니 그 때 한 일이 도움이 되었다’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체를 보지 못할 때는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다른 정보를 얻고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눈이 넓어지면 ‘아, 이게 이래서 도움이 되는 거구나’를 알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면, 보스가 시킨 일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일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왜 이걸 하는지,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 못마땅할 때가 많다. 특히 다른 조직에 비해 힘이 약해 보여서 할 수 없이 밀려서 일을 받아온 경우는 적어도 그날은 힘이 없어 우리를 고생시키는 보스가 참 무능해 보이고 얄밉다.

군대 시절, 나는 용산 미군부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내가 하기엔 너무 쉬운 컴퓨터 일이 대부분인 인사 행정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이등병인 내가 할 일은 미군 병장 보스의 일을 보조하는 타이핑 일. 보통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을 나는 2시간이면 다 하고 남는 시간엔 책을 봤다. ‘너무 편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한 날도 있었다.

너무 좋아하면 없어진다고, 이 생활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나를 아들처럼 이뻐해 주던 엄마 같던 보스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미식축구 선수 같은 근육질의 흑인 아저씨가 그 후임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이 아저씨는 가족을 미국에 두고 온 ‘기러기 아빠’였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군복이 터질 것 같은 몸매에 언제나 “예, 알겠습니다” 의 태도로 모든 사람들의 일을 다 걷어다 해 주는, 정말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내 보스가 되었다는 것. 컴퓨터를 못하는 이 아저씨는 컴퓨터와 관련된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도 내게 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보스와 부하는 지시하고 따르는게 당연한 건데, 미군과 카투사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군들의 잘난척 하는 마음과 우리 나라를 약간 깔보는 듯한 느낌, 모국어인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우리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같이 일하는 관계였다. 그 당시 이기적이고 개념이 없던 나는, 하루에 2시간 일하던 생활에서 이제는 이 아저씨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어떤 때는 야근까지 해야 하는 날이 생기니 짜증이 났다.

“문 일병, 이제부터 이 일은 우리가 해야겠다.”

“우리라뇨? 그 일은 우리 부서 일이 아닌데요.”

“아니야, 우리가 하기로 했어.”

“왜죠? 우리가 남의 일까지 걷어서 하니까 다른 부서들이 자꾸 자기들이 하던 일을 던지잖아요.”

“그래도 넌 나랑 일하는 사람이니 그렇게 해야 해.”

“왜 나죠? 난 아저씨 오기 전에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왜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거죠?”

같이 일하는 카투사 동료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될 정도로 매일 “Why me (왜 나죠)?”라는 말을 했다. 아저씨 입장에서도 훨씬 직급도 낮고 어린 녀석이 일을 시킬 때마다 ‘이걸 왜 해야 하냐고, 왜 자기를 시키냐고’ 따지니 나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날만 했다.

한 8개월인가를 매일 말싸움을 하다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야 하는 말싸움을 하느라 이때 내 영어가 많이 늘었다.) 어느 날 아저씨도 참다 못해 말한다.

“뭘 원하냐?”

“하루에 2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보스가 힘들어하는데도 이렇게 이야기한 걸 보면 20년도 지난 지금 생각해도 참 개념없는 쫄따구였다. 대학교도 2년 밖에 안 다닌 때라 그랬나.

아저씨도 서로 피곤한 게 싫으니 “좋다. 그럼 내가 2시간을 보장하고 그 시간 동안은 아무리 급한 일이 와도 내가 하겠다. 대신 나머지 시간엔 잘 도와라.”

“오케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서로 동의를 하고 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아주 쉬운 것도 한참 걸려서 낑낑대며 일하는 아저씨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휴, 내가 하면 5분이면 되는 걸 아저씨가 붙잡고 2시간을 하는 걸 어떻게 보고 있나.’ 신경이 쓰여서 보장해 준 2시간 동안에도 일이 오면 ”이리 줘요” 하고서 금방 해 줬다. 아저씨도 고마워하면서 다른 시간을 더 주고 하면서 서로 동지애가 생기고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때 팀워크가 뭔지를 처음 제대로 느낀 것 같다. 그 다음부터 아저씨가 한국을 떠날 때까지 거의 다투는 일 없이 척하면 척 하고 손발이 잘 맞는 팀으로 일했다. 이 아저씨하고는 몇 달을 으르렁거리다 삼촌처럼 정이 많이 들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가끔 검색해 보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그 후에도 직장에서 몇 번 개념 없는 행동을 하면서 윗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경험이 있어, 개념 없는 행동을 하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 옛날 내 생각도 나서 우습기도 하고 이해도 된다. 철없어 보이는 후배들을 보면, ‘왜 이러지?’ 라는 생각보다는 ‘얘네들도 나랑 비슷하네’ 혹은 ‘얘네들은 나보단 낫네’란 생각이 든다. 뭔가 부당한 것 같고 공평하지 않고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게 손해가 아니고 먼저 좀 퍼 주면 더 큰 좋은 일이 돌아올 수 있다는 (물론 계속 노동 착취만 하는 보스는 주의해야 하겠지만) 것을 이해하려면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며 몇 년은 걸려야 되는 것 같다. 진하게 경험한 경험자의 말을 믿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