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얼굴을 지켜주자

평소에 팀장님과 교감도 별로 없고 눈치도 없는 김과장이 지나가다가 우리 팀장님이 상무님한테 된통 혼나고 있다. ‘오늘 또 왜 저러나. 분위기 싸하겠네.’라며 돌아와서 부서원들에게 알린다. “상무님이 기분이 안 좋으신가봐.” 혹은 “팀장님이 뭘 또 잘못했나 봐.”

혼나고 온 팀장님이 팀원들을 보니 임원한테 혼난 걸 아는 눈치다. ‘에이, 쪽팔려.’ 혼나서 자존심 상해, 애들 보니 더 자존심 상해, 자리에 앉았는데 김과장이 와서 말한다.

“팀장님, 왜 혼나셨어요? 상무님 기분 안 좋으세요?”

(팀장님, 이를 꽉물고) ‘야, 불난데 기름붓냐? 이걸 죽여 살려?’라는 마음이 든다. ‘이 자식 이러니 동기보다 2년이 늦지.’

팀장님은 임원한테 혼난 것도 신경 쓰여 죽겠는데 쫄따구들 볼 면목이 없는게 더 걱정이다. 팀장님이 그나마 자존감이라도 강하면, “얘들아, 아까 봤냐? 너희들 보기 창피하게 또 혼났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장님들은 그런 마음의 여유나 강한 자존감이 없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똑바로 했어야지!”

‘아니, 자기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혼나놓고 왜 우리한테 그래? 우린 시킨 대로 다 해 줬는데. 똑바로 시키든가.’

애써 신경 써서 물었다고 한 김과장은 마음 속으로 ‘괜히 신경 써줬네. 그냥 모른 척 놔 둘 걸.’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팀장님이 혼나고 있는 걸 우연히 봤으면 모른척 하고 빨리 지나갔어야 한다. 팀장이 임원에게 ‘깨지고’ 있는데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잠시 슬쩍 보니 조직원들이 쳐다보고 있다면 정말 창피하고 정신이 없다.

나중에 그 조직원에게 와서 조심스러워하며 “내가 너희들 볼 면목이 없다.”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말하자.

“팀장님,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멀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요. 그냥 상무님하고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긴 했어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상사의 창피한 점은 본 척도 들은 척도 아는 척도 하지 말자. 절대 누구한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을 준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을 배우게 된 계기

어느 날, 부장님이 오셔서 물으신다.

“문병용 씨, 영어 공부 하는데가 있는데 같이 안 가볼래?”

“예, 다음에 같이 가시죠.”

몇 주에 한 번씩 부장님이 물어보시고 내가 다음에 가자는 이야기를 한지 2-3번이 지났다. 그 당시 영어공부라는게 학원 가는 것 아니면 카페에 외국인과 앉아 프리토킹하는 수준이라 아시는 외국인들이 있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한 번 가 보기로 하고 부장님을 따라나섰다.

장소는 종로 2가 국세청 빌딩, 지금은 삼성증권이 있는 높은 건물이다.

빌딩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 올라갔는데 내려서 보니 좀 으리으리한 비즈니스 센터가 있는 층이다. 들어갔는데 근사한 조명에 긴 원목 테이블에 의자가 쫙 놓여 있고 외국인들과 우리 나라 분들이 앉아있다. 다들 잘 차려입은 정장에 얼굴도 한 자리씩 하는 분들 같다. 책상에는 빽빽한 영어로 뭐라고 써 있는 종이가 한 장씩 놓여있다.

“부장님, 여기 뭐하는 데에요?”

“응, 있다가 자기 소개하라고 하면 30초 정도 이름, 하는 일,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는지를 이야기하면 돼. 그리고 구경해 봐.”

“예.”

저녁 7시 반이 되자 부장님이 앞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신다.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to Seoul Toastmasters.” 유창한 영어를 하시는 우리 부장님이 아주 멋지다.

“오늘 오신 분들, 어떻게 오셨는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영어 꽤 한다고 하고 살아왔는데, 사람들 행색을 보아하니 다들 한 자리씩 하는 분들인 것 같아 주눅이 들어 어버버 하면서 겨우 자기소개를 했다. ‘영어 좀 한다더니 이 정도였어?’라고 생각하셨을까봐 창피했다. 나머지 1시간 반 정도는 미팅을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면서 유심히 살펴봤다. 빽빽하게 적힌 것은 그날의 미팅 진행 순서,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 미팅에서 역할을 나누어 맡고 나와서 뭘 하고 들어가고 다음 사람이 나오고 들어가고, 그 모든 걸 다시 나눠 맡아서 서로 평가해 주고 피드백 해 주는,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는 학원 스타일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배우는 시스템이다. ‘야, 이렇게 훌륭한 모임이 있구나.’

“어땠어?” 끝나고 나서 부장님이 물으신다

“너무 좋은데요.” “저는 카페에서 외국인 몇 명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너무 프로페셔널한데요?”

“그렇지? 여기 진짜 좋은 모임이야. 이제 여기 나랑 같이 다니자고.”

매주 부장님 차를 얻어타고 모임에 나가면서 조직에서 리더로서 갖춰야 할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운 Toastmasters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평생의 멘토와 친해지게 된 계기

내가 사원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팀에 부장님이 계셨는데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영어도 아주 잘하시는 분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당시, 가장 핫한 디지털 제품은 PDA였다. Palm 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Palm Pilot이란 제품이 1990년대 중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당시, 나는 Palm을 사서 쓰던 얼리 어답터 (Early adopter)들보다는 좀 늦게 2000년에 Palm 보다 훨씬 싸고 기능이 좋았던 Handspring의 Visor 라는 제품을 샀다. 애플의 맥북처럼 주황색, 파란색 등의 예쁜 색상을 가지고 있으며 확장 슬롯에 끼우면 여러 기계로 변신하는 이 제품을 사서 지금 아이폰을 쓰듯 모든 것을 기록하고 씽크 (synch, 동기화) 했다. 그 당시 가장 비싸고 고급 기종은 Visor의 2배 정도 가격인 50만원 정도의 Palm Pilot V 제품이었다. 보급형 Palm Pilot의 플라스틱과는 다른 금속 재질의 얇은 제품, 보기만 해도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있어 보이는 이 제품은 내 기준으로는 너무 비쌌다.

내가 늘 Visor를 꺼내 뭔가를 적고 누르고 하고 있는 걸 보신, 디지털 기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부장님, “그건 뭐니?”라고 물어보신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창피할 수도 있는 이 순간에 훨씬 아랫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보신 윗분들에게 “예, 이거 PDA 라는 거에요.”라고 한 마디 하고 입을 닫을 수도 있고 (이러면 윗분들은 더 묻지 않으시고 10초 정도 더 구경하다가 멋적어서 가신다.)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해 드릴 수도 있다. 난 “예, 이게 PDA 라는 건데요, 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 디지털 비서에요. 여기엔 스케줄, 연락처, 메모, 이메일 등을 저장할 수 있고요, PDA용 소프트웨어가 많아서 다운받아서 설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죠.”

“아, 그래? 야, 신기하다. 뭘 할 수 있는지 좀 보여줘봐.” “가격은 어느 정도야?”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하는 회사의 제품도 아니지만 영업사원이 된 것처럼,

“예, 이런 이런것들을 할 수 있고요, 제가 쓰는 건 250불짜리인데요, 부장님은 이런 것 말고 아주 멋진 제품이 따로 있어요. 500불 정도 하는데요, 부장님은 그걸 쓰셔야 해요.”

“그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좀 알려줘.”

부장님은 미국에 주문을 하여 가장 고급 모델을 주문했다. 부장님의 최첨단 PDA는 언제나 너무 멋졌고 나는 그것보다 두 배 싸고 두 배 두꺼운 내 기계를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좋은 제품이라며 사랑했다. 난 유료 앱은 쓰지 않았는데 부장님은 며칠에 한 번씩 유료 앱을 사시고 가끔씩 이런 앱도 있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어느날 보니 부장님이 PDA를 더 많이 쓰고 계신게 아닌가.

“부장님, 유료 앱을 수십개나 사셨네요?”

“응, 이런 앱도 있더라.”

“부장님, 주위에서 PDA 쓰시는 친구분 없으시죠?”

“없지. 다들 뭐냐고 신기해 하고 대단하대. 문병용 씨 덕분이야.”

이제 하산하실 때가 되었다. 더 이상 가르쳐 드릴 것도 없고, 도움도 필요 없는 수준이 되셨다. “이제 부장님이 더 잘 아시네요.” 나보다 12 살이 많은 (띠동갑) 학생을 하나 키워낸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하다.

이후로도 부장님은 때때로 이렇게 좋은 세상 (PDA와 디지털의 세상)을 알게 해 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이나 하셨다. 이후 부장님은 내 인생에 많은 좋은 영향을 미친 Toastmasters를 소개해 주셨고, 우리가 처음 만난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중요한 결정을 상의하는 내 평생의 멘토가 되셨다.

친구 뿐 아니라 보스와도 좋아하는 관심사나 취미가 같다면 가까워지고 좋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 회사에서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쿨하게 일만 하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정을 중시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나라 직장에서는 ‘일은 잘 하는데 뭔가 불편하고 연결이 안 되는’ 느낌을 줘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보스와 일 이야기만 하지 말고 뭘 좋아하시는지, 뭐에 관심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보스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보스가 필요한 것도 알려드리고, 보스한테 배울 것도 배우면 얼마나 좋겠나. 운동이든, 술이든, 차 (car)든 좋다. 따로 공부해서까지 맞춰주라는 건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주변에서 보스에게 도움이 될 정보나 지인, 행사 등 리소스가 있으면 소개하고 알려드리자.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기억해 준 것을 고마워할 것이다.

“부장님, 임원 되셔야죠.”

평소엔 눈치 보며 이야기도 못하다가 술자리에 가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우리 부장님이 임원 되셔야 하는데.” “부장님, 임원되세요. 파이팅!” 하며 양주잔을 들고 오는 후배 팀원들이 있다. 부장님 생각에 ‘내 승진을 걱정해 주는 아주 기특한 녀석이네.’ 할 것 같은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녀석, 누군 임원 안 되고 싶어? 실적이 부족하고 운이 안 따라줘서 이번에도 승진이 안 되었는데 이 놈이 염장 지르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때로 ‘회사 빨리 나가란 말인가?’라는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건 부장님이 마음이 꼬인 거지, 우리 문제는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분들은,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보다, 상대에게 그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우리 부장님이 진짜로 임원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술자리에서 말로만 하지 말고 날 밝을 때 회의실에서 부장님의 상사 분들께 (특히 사장님한테까지) 들고 갈 만한 멋진 아이디어를 선물로 전해드리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면 부장님이 살아온 월드에서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의 변화와 관련된 개념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드려야 할 지도 모른다. 한숨 쉬지 말고 후배를 가르칠 때보다 더 조심하면서 정리해 드리고, 사장님께 가서는 어떻게 말씀 드리면 더 효과적일지까지 하나하나 코칭을 해 드리자. 부장님이 임원 되시면 여러분도 승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