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후 보스가 계산할 때 나는 어디 있어야 할까?

후배들이 애매하다며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상사가 계산하실 때 어디에 서 있어야 하죠?”

회식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상사가 계산대로 갔는데 자기들만 쏙 나가서 떠들고 있으면 상사는 ‘이 녀석들, 다 나갔네. 난 돈만 내는 사람인가?’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하여 상사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후배들. 그런데 내가 옆에 서 있어 보기도 하고 나가 있어 보기도 하고 내가 돈도 내 보니,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예 나가서 자기들끼리 떠들면 그런 생각 드는 것 맞다. 그런데 자기들이 돈을 보태서 낼 것도 아니면서 바로 옆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애들은, ‘개인 돈으로 사 주는지 법인카드로 사 주는지 볼까’라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 분은 사비를 털어서 애들 밥 사주고 술 사준대.”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런가 해서 선배들께 물어보니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는 분들이 꽤 된다.

이제 개인 돈으로 사주던, 부서비로 사주던, ‘맛있는 걸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마음을 가지고 적당한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자. 무슨 카드로 사주던 그건 보스 마음이고, 부담 없이 계산하고 돌아오면 “팀장님,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고 말하자.

보스의 부족함을 메워주자.

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내가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그룹은 영업조직, 텔레세일즈 조직, 제품 매니저들, 보스들, 지방 영업 사무소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 (도매, 소매 세일즈 파트너들, 마케팅 행사, 기술 교육 등 다양한 외부 협력 파트너사들이 있다) 등 8-9개의 다른 그룹의 각 그룹당 몇 명씩 되는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모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 뭔가 하나가 바뀌면 여러 그룹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했다. 아침에 출근해 전날 세일즈 데이터를 집계해 보고, 그날 계획을 세우고 저녁 먹을 때까지 하루 종일 다양한 사람들과 시간별로 미팅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 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본사, 싱가포르 아시아 본사, 아시아 지역 다른 나라들에서도 연락을 해온다. 갑자기 급한 컨퍼런스 콜에 들어오라고 연락이 오면 10분 내에 헤드셋을 끼고 보스와 함께 콜에 들어가야 하고 매일 쌓이는 영어 메일도 놓치지 않고 답을 해야 했다. 영어 능력은 외국계 회사에서 일 잘 한다고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도구였다. 차장인 내게 하루에 오는 메일은 100통이 넘는 우리말 메일을 제외하고 영어 메일만 100통, 보스인 이사님은 200통을 받는다. 이사님은 첫 직장으로 입사해 15년 이상 근무하며 영업 본부를 처음부터 일궈오신 분. 영어는 그다지 잘 하지 못하셨다. 하루에 200개씩 영어 메일이 쌓이면 제목만 읽기도 쉽지 않다. 제목을 읽고 정보성 메일도 읽어야 하지만 답을 꼭 해야 하는 메일은 반드시 시간 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영어 메일 때문에 고민하시는 이사님을 보면서 영어 잘 하는 내가 뭘 좀 해 드려야겠다 생각을 했다.

“이사님, 9시 50분에 싱가포르에서 OO가 보낸 메일은 읽어보셔야 합니다.”

“이사님, 3시에 미국에서 온 메일은 오늘까지 답을 하셔야 하는데요.”

“응, 알았어.” 대답은 하시는데 영어가 편하지 않으시니 읽다가 혹은 답장을 좀 쓰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놓고 나서는 일이 반복되면서 메일을 놓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줄지 않는다.

‘에이, 이거 내가 해 줘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님, 제가 답장을 좀 써 드릴까요?”

“응, 좀 써 줘라.”

답을 조금씩 쓰고 이사님이 좀 더 보완해 메일을 보내길 몇 주, 이렇게 해서는 빠뜨리지 않고 다 처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사님이 또 메일을 쓰신단다. 이사님 옆 자리로 갔다.

나: (장난스런 목소리로) “이사님, 비켜.” (이때 절대 퉁명스러워서는 안 된다. “이사님 좀 비켜주시겠습니까?”도 재미없다.)

이사님: (웃으며) “에이, 쉐끼. 알았어.”

(나는 이사님 의자에 앉았다. 이사님은 옆에 있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나: “불러.”

이사님이 불러주는 우리 말 답변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했다. 그대로 보내면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 검토를 같이 해 드렸다. 영어 writing은 안 되어도 우리가 reading은 좀 되니까.

“이사님, 우리 중학교 때 ‘cannot help ~ing’ 배웠잖아요. 생각나시죠?”

“응, 그건 알아.”

하나하나 번역했던 문장이 의도대로 쓰여졌다는 걸 확인시켜 드리고 말했다.

“이사님, 이제 싸인해서 보내.”

“응, 땡큐~!”

이사님은 이름만 써서 Send 버튼을 누른다.

우리 이사님은 비즈니스 감이 떨어지고 늘 완벽을 추구하답시고 마감시간을 하루 놓치던 내게 “비즈니스는 타이밍이 품질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며 한정된 시간 안에서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영업팀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 보는 법, 잘 볼 수 있게 정리하는 법을 액셀 템플릿을 손으로 그려가며 가르쳐주신 분이기도 하다. 조직에서 ‘쟤는 정말 안 된다. 보내야 한다.’라고들 생각하던 친구도 “내가 키워보겠다”며 걷어와 훌륭한 세일즈맨으로 키워낸 분이다. 참 훌륭한 리더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간적인 면이 물씬 느껴지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던 리더인 내 보스가 영어 좀 부족한 게 뭐가 문제인가. 그건 내가 좀 더 나으니 해 드리면 되지. 난 이사님의 영어 메일을 써 드리고, 컨퍼런스 콜에 같이 들어가서 “한국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라는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도록 종이에 문장을 써 드렸다. 외국의 중요 손님들이 오실 때 이사님이 하실 말씀을 준비해 영화 대본처럼 준비해, 이사님 대사 연습해 보시라고 앞에서 지켜보고 발음 연습을 시켜 드렸다.

“내가 네 앞에서 영어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냐, 쪽팔리게.”

“이사님, 이사님 영어 실력 내가 다 아는데 뭐가 쪽팔려. 그날 가서 영어 안 되는 게 쪽팔린 거지. 빨리 해 보세요. 완벽하게 될 때까지 연습해야지. 빨리~.”

마지못해 연습을 하지만 시작하면 별로 창피할 것도 없다. “그 발음 다시, 다시. 이렇게.”

그날 가서 연습한 대로 평소보다 훨씬 유창하게 하시니 외국 손님들이 다들 말한다. “영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이사님도 기분 좋고 나도 완전 보람있다.

이 정도 관계가 되면, 너무 깍듯하게 하는 것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 하면 “아”하는 관계. 얼굴만 봐도 뭐가 필요한지 딱딱 알아서 해 주는 관계. 내가 보스 일 좀 걷어와서 두 배 해 주면 어떤가. 몸 좀 피곤해도 기분이 좋아 피곤함 다 이겨낼 수 있다.

가끔, “그러다가 보스가 자기 일 아무 것도 안 하고 저한테 다 맡기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어디까지 맡기시는지 한 번 해 보세요. 보스가 중독되면 엄청 잘 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경우 없이 다 해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요.”라고 답해준다.

보스가 못하는 부분을 보고 불평하는 대신, 내가 그걸 더 잘 할 수 있다면 내가 어떻게 보스의 부족함을 메워줄까를 고민하자. 보스가 사장님 발표 때마다 쫄아서 망쳐서 우리 부서가 대접을 못 받는다면, 프레젠테이션을 훨씬 잘 하는 우리가 자료도 만들어드리고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가르쳐’ 드리고 연습 및 리허설을 시켜 중요한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발표하도록 도와드리자. 후배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회사 대표로 나갈 때 도와주듯. 다만 선배님이니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배려해 드리고, 자존심 상해하시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이게 무슨 자존심 상할 일이냐고 말씀드리자. 회사가서 보스를 만나는게 즐거운 일이 된다.

보스의 식사를 챙겨라.

조직의 꼭대기로 올라가며 고위 임원이 되면 보통 자기만의 사무실을 받는다. ‘조용하고 아늑한 자기 방이 있는 임원들은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다. 증권회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긴 후, 4년이나 금융 회사에서 일했던 내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나의 보스 상무님이 남들보다 더 고맙고 애틋했다. 상무님은 늘 방안에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 계셨는데, R&D 조직의 분위기는 드러내놓고 보스를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도, ‘상무님 식사 어떻게 하시지?’라고 궁금해 하면서도, ‘점심 약속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간 경우도 있었다. 어느날, 상무님도 약속이 그리 많지 않고, 우리와 같이 가셔야 굶으시거나 혼자 식사하는 일을 면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상무님이 먼저 방에서 나와서 “식사는 어떻게 할까?” 하시는데 후배들이자 부하직원들인 우리가 머뭇거리며 슬그머니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안 되겠다. 상무님이 먼저 나와서 저러시면 되겠나’ 싶어 앞으로는 막내인 내가 식사시간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 ‘식사하러 가자’고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슬슬 나가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때 상무님 방에 가서 “상무님,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여쭤보았다. “응, 가야지.”라고 하시며 따라나오시거나 “응, 약속 있으니 가서들 먹어.”라고 하신다. 내가 챙기니 우리 팀 형님들, 누님들 신경 안 써서 좋아, 상무님도 가만히 계시면 되니 좋다. 나만 조금 신경쓰면 된다. 그 다음엔 방에 가지 않고 전화로도 여쭤봤다. “상무님, 식사는요?” 전화도 똑같다.

어느날, 상무님이 보스인 전무님의 갑작스런 지시로 일을 맡아서 뭘 열심히 하고 계신다. 내가 봐도 오늘 식사는 못 하실 것 같다. 전에야 못 드시겠거니 하고 간 적도 있었겠지만, 내가 챙기는 사람이니 가서 여쭤봐야 하지 않겠는가. “상무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어요?” “응, 오늘은 전무님 시키신 일 때문에 못 가.” “예” 하고 나올까 하다가 마음에 걸려 이렇게 여쭤보았다.

“햄버거라도 사다드릴까요?”

“응, 그래줄래?” 하시며 걸어놓은 양복 쪽으로 가신다. 돈 주신다고.

“상무님, 됐어요.” 라고 말하고 급히 나왔다. 상무님 씩 웃으신다. 고마워서. 이럴 때는 너무 깍듯이 “상무님,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나는 생각했다. 5천원을 주고 햄버거 세트를 사다 드렸다. 많이 고마워하신다.

또 다른 날, 저녁 회식 때였다. 회사 근처의 퓨전 중식 음식점에서 먹고 있는데 상무님은 약속 때문에 다른 곳에 가셨다. 한참 먹다 보니 상무님이 안 계신게 약간 마음에 걸린다. 약속 가셔서 우리보다 더 좋은 음식 드시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늘 같이 먹다가 우리끼리만 먹으니 생각이 난다. “상무님한테 전화 한 번 해 볼까요?”라고 형들에게 물으면 “너 왜 그래?” 그럴 것 같아서 그냥 버튼을 눌렀다.

“상무님? 문병용입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계세요? 저희는 OO에서 저녁 먹고 있습니다.”

“응, 그래.”

혼자만 상무님한테 인사하고 전화 끊으면 아부 같을까 봐, 형들을 다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전화를 받은 형들, 누나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다들 인사를 했다. “예, 상무님. 안녕하세요.”

한 명씩 다 돌려서 전화를 한 후 내가 다시 받아서 말했다.

“상무님, 맛있는 집인데요. 오늘 같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섭섭하네요. 그래도 먹다가 상무님 생각나서 전화드렸어요.”

“그래, 고마워.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상무님, 그럼 비싼 거 먹는다~.”

“허허, 그래. 비싼 거 다 시켜 먹어.”

전화를 끊고 형들을 보며 말했다.

“상무님이 비싼 거 먹으라고 하시네요. 이제 다 시켜 먹지요.”

메뉴 단가가 2배짜리로 올라갔다. 전혀 눈치 보지 않고 평소에 못 먹은 것들도 다 먹었다.

다음 날, 보통 같으면 ‘오, 많이 나왔네.’ 하며 눈치를 좀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수십만원짜리 영수증을 갖다 드렸다. 상무님은 금액도 안 보시고 “어제 많이 먹었냐?” 하며 웃으신다.

뭔가 계산을 하거나 전략적인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 장유유서에서 나온 인정 머리 있는 작은 행동이 이렇게 서로간에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상무님은 자리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식사를 챙기는 나를 특별히 이뻐하셨던 것 같다.

과장 때 이 경험을 하고 직급을 높여가며 아래 동생들이 생겼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 주며 가르쳤다. 가장 기본적인 식사를 챙기라고. 나는 밥을 먹었는데 보스가 일 때문에 식사를 못하고 사무실로 들어오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들 밥 먹었냐?”

“예.”

“알았어.” 하면서 혼자 식사를 하러 가는 보스의 마음은 참 쓸쓸하다.

난 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예, 먹긴 했는데 또 먹어도 됩니다.”하면서 따라나서라고. 가서 안 먹더라도 보스 혼자 시계보며 눈치보며 식사하시도록 놔 두지 말고 디저트 하나 시켜서 함께 먹으며 말동무 해 드리라고.

나도 임원이 되어 보니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나와 밥 먹는 것을 (일 시킬까봐, 평가할까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외부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임원분들도 계셨지만 나는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에 나오기 전에는 내부 사람들을 케어하는데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직원들과 식사를 많이 했다. 약속이 있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밥 먹을 사람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내가 가르친 후배들은 ‘교육이 잘 되어 있어’ “상무님, 가시죠.”하면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점으로 가서 옆에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고 듣는다. 당연히 나도 “야, 밥 먹었어도 이거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잖아.” 하면서 맛있는 걸 권한다.

‘우리 팀장[임원]은 약속도 없냐, 우리 아니면 밥 먹을 사람도 없냐. 맨날 저 사람하고 먹어줘야 하냐.’라고 생각하지 말자. 직원들을 챙기고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친해지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싶어하는 보스들이 더 많다. 보스의 식사를 챙기자. 더 이상 외롭게 혼자 남아있지 않도록. 같이 식사할 사람은 있는지 자주 여쭤보자.

보스가 바보같고 무능력한 것 같다면

‘내 보스는 능력 없는 바보 같은 아저씨다. 신입 직원 3배의 연봉을 받으며 하는 일도 없다. 성격도 거지 같아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사람만 없어지면 지옥이 끝나고 천국이 시작될 것 같다.’

그런가? 이 사람 없어지면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이 사람의 어떤 면을 문제 삼아 쫓아냈다고 치자. 정말 좋은 상사가 새로 와서 우리와 조직을 발전시켜준다. 이러면 정말 좋겠지. 하지만 현실은 이런 일보다는, 조직도 같이 없어져서 팀원들이 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일이 더 많다.

‘날 아는 보스가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 설명해 줄 사람도 없고, 선배들도 자기 살 길 찾기 바쁘다. 어느 부서로 가고 싶냐는 면담만 여러 번, 원하는 부서에도 자리가 없단다. 떠돌다가 날 받아준다는 부서에 인사를 갔더니 거긴 더 가관이다. 차라리 예전 보스가 나았어. 그 사람은 능력 없고 성격은 안 좋아도 사악하진 않았는데.’

거기다 내가 그 마음에 안 들던 보스를 쫓아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면 어떻게 되나? 그 보스에 대해 동정표를 갖게 된 사람들이 그 소문을 내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 여러분의 등에는 자신만 모르는 ‘보스 킬러’라는 낙인이 찍힌다. 지금 조직에서는 더 이상 나를 키워줄 보스는 없다. 자기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보스의 능력이나 성숙도에 부족함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도와줘야 여러분이 올라간다. 보스를 한 자리 위로 올려주고 그 자리가 비면 나를 끌어올려서 같이 크는 게 제일 좋고, 보스가 다른 데로 가면서 그 동안 그를 가장 잘 보좌했던 나를 추천해서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이 나를 키워주기는 어려워도 못 크게 막기는 아주 쉽다. “쟤는 안 됩니다.”라는 한 마디에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분을 그 사람이 떠난 자리에 앉혀주는 조직은 없다.

또, 정말 이상한 보스라고 해도 그 보스가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 하는 동안, 조직에서 여러분에 대한 평판은 ‘성인(saint)’ 수준이 된다. ‘저런 이상한 사람도 잘 모셔주는데 나한테는 얼마나 잘할까?’ 라며 다른 조직장이 접촉해 온다. “김 과장, 요즘 어때? 나랑 술 한잔 할까?”라며. 나가보면 “너 대단하더라. 나랑 일하자.”라고 한다. 이 보스가 놓아주지 않아 못 간다 해도 나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그 조직장이 그 위의 보스에게 이야기해 여러분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훨씬 나은 새 보스와 일할 수 있는 날이 온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옥 같은 날들, 생각보다 오래 안 간다. 여러분이 조금만 더 참고 해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