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오랜 시간 동안 커리어를 상담해 주다 보니 주위에서 지인들을 통해 고민 상담을 해 오시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보통은 고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는 아들을 두신 부모님들이 많다. 만나기 전에 전화로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당사자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를 물어본다.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이유도, 그냥 싫어서가 아니라, 이걸 왜 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모르겠는데 하라고 하니까 하기 싫은 것이다.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연결해서 알려주지 않으니까.

소개받은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들어보니 아들은 건축가가 되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만나러 갔다. 곰같은 느낌의 덩치가 큰 고등학생 아들, 어머니 때문에 강제로 끌려나온 모습이다. 인사도 대강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왜 나왔냐, 공부는 재미가 없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안 된다. 다짜고짜 그 세대의 언어 수준으로 욕을 섞어 가며,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맨날 공부하라고만 하고. 제대로 놀아본적도 없는데 거지 같지 않냐.”라며 그의 마음을 읽어준다. ‘어, 이 아저씨, 나랑 좀 말이 통하겠는데’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들더니 끄덕끄덕한다.

나: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건축가가 되고 싶다며?”

학생: “선생님, 어머니는 제가 건축가가 되고 싶어하는 줄 아시는데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온라인 가상 세계에서 건물이나 캐릭터를 만드는 거에요.”

나: “아, 그래? Second Life나 게임 월드 같은 세계?”

학생: “예.”

그랬구나. 이러니 온라인 게임이 뭔지도 잘 모르시는 치과의사 어머니가 아들의 꿈을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나: “그래, 좋지. 그런데 그런 분야 공부는 우리나라에서는 가르쳐 주는 곳이 별로 없고 미국에는 별도로 가르쳐 주는 학교들이 있던데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지 그래.”

학생: “그래요? 미국에 가서 공부하려면 영어로 잘 해야 되죠?”

나: “영어로 수업하고 질문도 해야 하니 그렇지.”

학생: “그럼 영어 공부도 이제 해야겠어요.”

이야기를 시작한지 불과 30분 만에 아들의 눈빛과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본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진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해서 배우면 재미있을 텐데 그렇질 못하니 공부를 안 하던 아들이 이제 길을 찾은 것이다. 몇 년 후 새로운 인생 방향대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나중에 살고 싶은 삶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연결이 되고 지금 일의 의미를 느끼면서 하면 밤을 새워도 즐겁고 좀 힘든 것도 견딜 수 있다. 열심히 하게 되니 당연히 성과도 더 난다. 왜 하는지 모르고 그냥 하라고 하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면서 기운빠져하고 칼퇴근하고 싶은 것이다. 리더가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젊은 세대가 그 이전 세대보다 일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조직원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우리 일의 의미를 그들의 미래와 연결해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달라진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난 이 부서 토박이인데 나보다 어린, 이 분야 경험이 없는 사람이 조직장으로 왔다. 어떻게 할까?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능력이든 나이든 나보다 잘난 것이 없는 것 같다면 인정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은연 중에 그 마음을 드러낸다.

팀장님이 회의시간에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한다. 내가 볼 땐 방향이 영 아니다. “팀장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되요. 여기선 이렇게 하는 거에요.” 내 측근 후배 두 명은 나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팀장님 눈치를 보는 나머지들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내용을 잘 모르는 팀장님도 멋쩍어 하며, “그런가요?”라고 말한다.

오후 팀 회의에서 팀장님이 업무 지시를 한다. 오전에 고개를 끄덕이던 두 명 중 한 명이 “제가 이걸 하는 게 맞나요?”한다. 이번엔 내가 ‘팀장,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라는 생각을 하며 지켜본다. “김 대리가 좀 해 줘.” 사정하는 팀장님을 보기도 불편하다. “그럼 누가 해? 하라면 해.”라고 해도 분위기가 싸했을 것이다.

새로 온 업무를 잘 모르는 팀장과 기존 조직의 터줏대감 사이의 갈등, 새로 온 임원과 고참 팀장과의 갈등 때문에 그 아래에서 새우등 터지는, 열심히 일하고 싶은 조직원들이 의미와 재미를 잃어간다. 당연히 조직은 썩기 시작한다.

3개월이 흘렀다. 팀장님이 이제 업무를 대강 다 파악했다. 누구 때문에 일이 잘 안 되는지도 알았다. 이제 부서의 쇄신을 위해 나를 다른 부서로 보내야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나는 몰랐다. “차장님, 상무님이 지시하신 것도 있고 이제 다른 일도 좀 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 TF에 넣기로 했습니다. 가셔서 6개월 하시다가 신설 부서로 발령날 겁니다. 가서 잘 해 주세요.” 팀장님이 말하지 않은 것은, 영화에서 본 유명한 장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아까 똑같은 상황에서 팀장님이 일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코칭을 해 주었다면, 새 팀장님을 따르지 않고 나를 따르는 후배들을 데리고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나 고마워하던 팀장님이 나를 더 밀어주고 의지하면서 다른 부서가 신설될 때 팀장 후보로 추천해 주지는 않았을까?

조직장이 자리를 못 잡고 조직이 잘못되었을 때 이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우스워보이더라도 일단 보스로 온 사람은 그 자리에 맞게 대접해 주고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맞다. 나의 그 마음가짐을 훌륭하게 생각하는 동료와 후배들까지 지지해 줄 것이다.

고객을 리드하는 법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상무님께서는 마케팅 매니저도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 좋은 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나가서 새로 나온 오피스 2007을 팔아보라고 하셨다. 그것도 12월 한 달 동안 50개 파트너사의 영업사원들을 이끌고 200개가 넘는 고객사를 방문해서.

모든 고객사를 직접 다 방문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주요 고객부터 파트너사와 함께 방문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데모를 보여드렸다. 파트너사 영업사원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내가 직접 하기도 했는데 하면서 느낀 점을 영업 일지에 적어 모든 파트너사 직원들과 내부 동료들, 보스들께도 공유해 드렸다.

세일즈에서 중요한 건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혜택‘이라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는데, 고객의 반응을 보며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엑셀 2003 버전은 한 파일에 6만 라인까지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는데, 2007 버전부터는 100만 라인까지 사용할 수 있게 발전했고 이 기능을 핵심 가치로 설명하는 상황이었다.

같이 나간 영업사원은 “고객님, 새로운 엑셀을 사시면 훨씬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6만 라인이 아니라 100만 라인까지 지원하거든요.”라고 말했다. 고객의 얼굴을 살피니 ‘와, 정말? 대단하다. 정말 좋아졌네.’라는 표정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고객이 다루는 엑셀 파일은 6만 라인, 6천 라인도 아닌, 600줄 아니면 60줄 짜리 파일 아닌가. 난 60줄짜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6만도 필요 없어.’라는 고객에게 우리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100만 라인 이야기는 아무 느낌도 주지 못하는 의미 없는 자랑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객님, 100만 라인이 어떤 의미냐면요, 그 동안 고객 데이터를 엑셀로 다운받아서 처리하실 때 데이터가 많아서 6만 라인씩 파일 수십 개로 잘라서 처리를 하다가 데이터를 수정해야 하면 그 파일들을 다 열어서 하나씩 수정하고 저장하던 일을 이제 안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오, 그런 뜻이군요.”

또 다른 고객사의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다 좋은데 새 오피스를 사려면 2억은 들 텐데 너무 비쌉니다.”

내가 말했다. “사장님, 물론 2억은 큰 돈입니다. 하지만 지금 버전의 파워포인트로 고객에게 보여드릴 제안서 만드실 때 디자이너 고용해서 하시잖아요? 조직도나 차트 예쁘게 그리려면 줄 맞추고 하느라고 몇 시간씩 걸립니다. 이번 버전에 새로 나온 스마트아트라는 기능을 쓰면 아마추어가 5분 안에 조직도나 차트를 멋지게 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어 고용하셨던 분들 인건비를 계산해 보면 아마 6개월까지는 손해라도 그 다음부터는 이걸 사서 직원들께서 직접 만드시는게 이익일 겁니다.”

사장님은 계산을 하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다음 주에 견적을 좀 보여주세요.”

고객은 우리 제품의 기능이 뭔지, 뭐가 그리 대단한지 관심이 없다. 고객은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 문제를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해 주려 하는 영업사원, 파트너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프레젠테이션에서 고객인 청중이 중요하듯, 모든 비즈니스에서는 공급자인 내 입장이 아니라 수요자인 고객의 입장에서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제안해야 한다. 고객도 우리가 리드해야 한다.

모든 사장님들이 뽑고 싶어할 사람

​지난 주 한 한기 동안 강의했던 경기도의 국립대학 취업 교과목 강의를 마쳤다. 그동안 특강만 많이 하다가 학기 전체를 맡아 한 첫 강의여서 그런지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내 새끼 같은’ 느낌도 들고 (실제로 저학년 학생들은 딸아이와 몇 살 차이도 안 난다) 철부지 아이들 같기도 한데 때로 어른스러운 모습에 감탄하기도 한다. 욕심을 내서 매시간 숙제를 냈다가 학생들도 나도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배운게 많았다고들 하니 흐뭇하긴 한데 다음 학기까지 몇 명이라도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니 부담도 된다.

똑같은 숙제를 내도 어떻게 해 오는지가 학생들의 능력, 노력 수준에 따라 많이 다른데 몇 명의 학생들은 정말 놀라운 수준으로 써 온다. 그 중 한 4학년 학생은 학교를 다니던 중 (아마 휴학을 하고 다녔던 것 같은데) 몇 달 동안 일했던 작은 회사에서 1,000군데가 넘는 거래처의 미수금을 찾아내서 못 받은 돈을 받아내고, 10박스가 넘는 5년치 회사 영수증과 파일을 다 꺼내와 분류하고 증빙을 갖춰 세무조사에 대비해 세금을 절약했다는 이야기를 써 왔다. 다른 업적들도 있었지만 이 두 가지 일만으로도 ‘정말 모든 사장님들이 뽑고 싶은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매 수업 시간에 이 학생의 숙제를 좋은 예로 소개하고 “다들 OO처럼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도 했는데 지난 주 마지막 시간에 “OO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니?” 했더니 모 대기업 금융기관 서울 본사에 인턴으로 지원했는데 이틀 후 최종면접만 남았다고 한다. 수제자 같은 친구인데 꼭 합격했으면 해서 수업 끝나고 잠깐 남으라고 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나 잘 할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는데 업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재무 회계 쪽 일을 하려 하는데 꼭 어느 업종, 어느 회사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업종에 대한 열의도 보여야 하니, 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중요한게 뭔지, 지원하는 회사는 뭘 더 잘 하면 좋을 것 같은지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게 하고 내 생각도 이야기를 해 줬다. 학생들 수준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유심히 잘 듣고 녹음도 해 갔다. 보내면서도 ‘그날 잘 하려나. 잘 되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틀 후 오늘 연락이 되어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니 그날 인터뷰 후 바로 합격했다고 한다. 다행히 같이 준비한 질문들이 나왔고 면접관들도 대답을 참 잘 한다고 하셨다고. 주변 지원자들을 보니 다들 명문대에서 온 대단한 스펙의 소유자들이 많아 많이 쫄았었나본데 그리 알려지지 않은 학교에서 왔지만 누구보다 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증명해 합격했다. 면접을 잘 한 것도 중요했지만 이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를 서류로만 봐도 누구나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배경이나 스펙이 좀 부족해도 이런 친구들은 어딜 가나 성공한다. 주변에서 “네가 뭘 그렇게까지 욕심을 내니” 하더라도 본인이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꾸고 계속 노력한다면 아마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같은 수업을 들은, 같은 과의 또 다른 훌륭한 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OO는 OO 금융기관 서울 본사 합격했다는데 들었니?” 이 친구 부러워하면서 약도 오르나보다. 묻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이렇게 할 거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길게 문자로 보내왔다. 나도 참 얄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