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제공하라

핀테크 기업들이 언론에 보도되면 홈페이지에도 가 보고 모바일 앱도 한 번 깔아본다. 예전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일하던 시절과 비교해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혁신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고 싶어서 써 본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금융전문가와 IT 전문가가 모여서 혁신적인 서비스도 만들고 금융회사와의 협업도 잘 되는데 우리 나라는 금융전문가가 없는 회사에서 만든 앱은 금융소비자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고, 금융 전문가들만 모여서 만든 서비스는 혁신적인 면이 부족하고 아직도 전통적인 금융 마인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왕년에 증권계를 평정했던 시스템을 만드셨던 고위 임원 분이 핀테크 회사를 만들었다고 신문에 났다. 들어가서 서비스를 써 보려 하니 자꾸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라는 메시지만 짜증나게 뜬다. 무료로 충분히 써 보고 더 좋은 기능을 위해, 더 큰 용량을 위해 유료회원이 되라고 유도하는 글로벌 1등 서비스들에 익숙하다가 서비스 가치를 보여주지도 않고 자꾸 돈 내라고 하는 서비스를 보니 낯설다. 웹에서만 그런가 싶어 모바일 서비스를 써봤다. 똑같다. 맨 아래 가장 중요한 네 가지 메뉴 중 어느 것을 눌러도 ‘유료회원 가입 페이지로 가시겠습니까?’만 묻는다. 하다 하다 ‘도대체 얼마야?’라는 마음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다시 홈페이지로 돌아갔다. 그 후엔 계속 도돌이표. 결제를 하려 해도 하게 해 주질 않는다. ‘이런 앱을 출시해 놓고 아무도 관리를 안 하나?’ 이 회사는 계속 발전하겠지만 나는 당분간 이 회사가 크게 발전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이제 관심도 없다.

무료 경제에 관한 베스트셀러들이 나올 정도로 무료는 강력한 요인이며 (쓸만한 서비스가 아니면 무료가 뭐고 다 필요 없다. 가치가 있을 경우에) 무료로 쓰다가 너무 좋아서 충성 고객이 되고 주위 사람들한테 좋다고 소문 낼 정도가 되었을 때 회사가 고마워서, 혹은 ‘돈 내면 훨씬 좋은 걸 준다니 한 달에 몇 천원, 몇 만원 내 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등이 기본적으로 다 공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료로 퍼 줘라. 기대한 것보다 늘 더 많이. 그 중 유료고객이 나온다.

회사에는 얼마나 충성해야 할까?

예전엔 가족을 버리고 회사에 충성해야 성공한다고 가르쳤다. 이제 회사에서도 개개인을 책임질 수 없어 그렇게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겉으로만 “예, 예” 하면 뭐하겠는가.

조직원들의 충성심과 헌신을 기대하는 리더분들이여, 이렇게 말씀해 보시라.

“충성해, 회사가 보상할 거야.”

조직원들이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무슨 보상이요? 누가 그렇게 보상 받고 잘 되었는데요?”

할 말이 없다. 그 누군가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 스스로가 동기 부여되어 열심히 하게 할 방법이 있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이렇게 말씀해 보시라.

“가족 버리고 회사에 충성하라고 안 하겠다. 네 자신과 가족을 위해, 네 커리어를 위해 회사 돈으로 열심히 배우고 시도해라. 이기적인 마음으로 해도 좋지만 드러내지는 말고, 너 혼자만 좋아질 방안 말고 너 자신과 회사에 둘 다 도움되게만 해 줘라. 평생 나를 위해 일 안 해도 좋다. 대신 있는 동안은 내가 너한테 제일 많이 투자하고 널 힘들게 가르쳐서 선수로 만들 테니 같이 있는 3년 동안은 너와 나,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해줘라. 마켓에서 선수가 되면 내가 추천서 써줘서 가고 싶은데 보내줄게. 그때 나랑 또 하고 싶으면 하고 가고 싶으면 가는 거다.”

훨씬 현실감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믿지 않을 말 대신, 그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대변해서 먼저 해 보자.

초심을 잃을 때 일어나는 일

난 늘 자신감과 겸손함의 밸런스를 고민한다. 자만심까지는 가지 말아야 하지만 적절한 자신감은 나 자신에게도 기운을 주고 고객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준다. 어떤 고객, 어떤 청중이 와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신 준비를 엄청 많이 해가면 보통은 결과가 좋다.

그런데 1년에 두 번 정도 충격적인 평가를 받을 때가 있다. 같은 내용도 단 한 번도 똑같이 하지 않고 뭔가를 바꾸기 때문에 (내가 지겨워서 똑같이는 못한다) 매번 그 전 강의와는 달라진 것이 하나는 있고 청중 피드백을 반영하기 때문에 더 나아진다. “잘 한다, 잘 한다” 이야기를 여러 회사에서 연달아 듣다가 “이 정도야 뭐” 하면서 잘난척하는 마음으로 가서 하는 날은 반응이 약간 미지근하다. ‘왜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지?’라는 마음이 생기면 똑 같은 메시지도 더 강압적으로 세게 말하고 더 잘난 척 내 셀링을 하게 된다. ‘오늘은 청중 표정이 좀 안 좋았는데 반응도 안 좋겠다’ 싶으면 여지없이 “좀 부담스러웠다”, “거북했다”, “잘 난 척 한다” 등의 피드백이 나온다. (내 생각엔 “재수없다”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주최측에서는 미안해서 말을 훨씬 온화화게 하고 때로는 피드백 원본을 보내준다.

처음엔 충격이 크지만 그 다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내가 뭘 다르게 했어야 했나’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고 며칠 생각해 보면 대부분 내가 청중의 상태를 알려고 하지 않고, 미리 판단해서 이렇게 하시라고 하고, 공감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안 되냐, 난 되던데 하는 식으로 한 경우였다. 같은 회사의 다른 차수에 또 가서 이번엔 훨씬 겸손한 마음으로 청중들의 상태부터 파악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쉽지 않은 현실을 공감해 주고 나서, 그런데 이렇게도 해 보니 좋더라 라고 이야기한다. 같은 회사, 같은 직급의 청중인데도 반응이 하늘과 땅 차이로 나온다.

좀 잘 된다고 나를 찾아준 고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돈을 쫓을 때, 사람들은 초심을 잃었다고 한다. 오픈하고 두 달 동안 친절하고 맛있던 음식점도 잘 된다고 불친절하고 음식양도 줄이면 손님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문을 닫는다. 모든 일이 다 이런 것 같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듣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전달이 되지 않아 소용이 없고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종종 기억하고, 되도록 겸손하게 보이도록 애쓴다. 물론 때로 불쑥불쑥 잘난척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이 때는 양해를 구한다. “아직도 제가 자신감과 겸손함의 밸런스를 못 찾고 계속 노력 중이라고.”

설득할 때는 꿈과 공포를 팔아라

네이버 금융 서비스를 담당하던 시절, 미국 인터넷 금융 서비스를 한참 벤치마킹하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잘 안 되는데 미국에서는 잘 되던 “계좌통합 (account aggregation)”이란 서비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거래하는 많은 금융회사의 계좌를 한 곳에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우리 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고 임원분과 회장님께 보고하고 ‘네이버 통합계좌조회 서비스’를 준비하게 되었다. 회장님은 승인해 주시며 사람들이 많이 쓰는 금융회사와 엮어야 의미가 있으니 30개 메이저 금융회사와 제휴해야 한다고 숙제를 주셨다.

요즘과 달리 그 당시엔 금융회사들이 온라인 비즈니스에 대해 경험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네이버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네이버가 같이 하자는데 같이 해야 해?”라고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1등부터 5등까지의 회사를 목표로 하고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회사를 찾아서 매일 회사가 있는 분당과 금융회사들이 있는 여의도나 광화문으로 왔다 갔다 했다. 지방에 있는 주요 은행들과의 제휴를 위해 부산, 대구, 광주 등에도 출장을 갔다.

보수적인 문화의 금융회사들은 신기하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네이버와 왜 해야 합니까? 다들 하면 우리도 해야지요. 지금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지금 제휴를 하시면 이런 혜택을 드립니다 라며 5천만원짜리 광고도 무료로 몇 달 해 드리고 등등 파트너로 참여시키기 위해 회사 내 여러 부서에서 얻어낸 떡을 가지고 갔다. 아무리 떡을 드리겠다고 해도 관심이 없다.

‘이번에 설득이 안 되면 다시 오기도 힘든데 어째야 하나, 누가 하나 먼저 해 줘야 나머지도 따라올 텐데.’하다가 어느 날 한 파트너께서 ‘이거 하면 우리가 큰 리스크(위험)을 먼저 져야 합니다.’라는 반응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팀장님, 이거 제휴하시면 리스크고 안 하시면 리스크 아닙니까? 저희는 다니면서 다른 회사들 다 꼬시고 제휴하면 신문에 낼 텐데 그 회사들이 작정하고 다 같이 안 하면 모르겠지만 그 중 누군가는 할 거고, 또 누군가가 따라 할 텐데, 나중에 경쟁사들 다 하고 나서 팀장님 회사만 안 되어 있으면 신문에 난 다음에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때 임원 분이 오셔서 김 팀장은 뭐하고 있었어? 하시면 뭐라고 하실 겁니까? 그게 팀장님한테 제일 큰 리스크 아닙니까?”

“어휴..”하면서 몇 초 생각을 하던 금융회사 팀장님, “합시다.” 이렇게 해서 1년 반 동안 금융회사들과 금융감독원을 설득해 30개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한 네이버 통합계좌조회가 탄생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편리한 서비스는 대다수 국민들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매니아 사용자층이 형성된 의미 있는 서비스였다.

오랫동안 많은 파트너와 고객, 위 아래 옆 동료들과 일하며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운 것은, 기본적으로 설득은 객관적인 사실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방이 좋아지는 꿈을 꾸고 비전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로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지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도 꽤나 효과적인 설득 방법이었다.

고객을 리드하는 법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상무님께서는 마케팅 매니저도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 좋은 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나가서 새로 나온 오피스 2007을 팔아보라고 하셨다. 그것도 12월 한 달 동안 50개 파트너사의 영업사원들을 이끌고 200개가 넘는 고객사를 방문해서.

모든 고객사를 직접 다 방문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주요 고객부터 파트너사와 함께 방문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데모를 보여드렸다. 파트너사 영업사원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내가 직접 하기도 했는데 하면서 느낀 점을 영업 일지에 적어 모든 파트너사 직원들과 내부 동료들, 보스들께도 공유해 드렸다.

세일즈에서 중요한 건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혜택‘이라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는데, 고객의 반응을 보며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엑셀 2003 버전은 한 파일에 6만 라인까지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는데, 2007 버전부터는 100만 라인까지 사용할 수 있게 발전했고 이 기능을 핵심 가치로 설명하는 상황이었다.

같이 나간 영업사원은 “고객님, 새로운 엑셀을 사시면 훨씬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6만 라인이 아니라 100만 라인까지 지원하거든요.”라고 말했다. 고객의 얼굴을 살피니 ‘와, 정말? 대단하다. 정말 좋아졌네.’라는 표정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고객이 다루는 엑셀 파일은 6만 라인, 6천 라인도 아닌, 600줄 아니면 60줄 짜리 파일 아닌가. 난 60줄짜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6만도 필요 없어.’라는 고객에게 우리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100만 라인 이야기는 아무 느낌도 주지 못하는 의미 없는 자랑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객님, 100만 라인이 어떤 의미냐면요, 그 동안 고객 데이터를 엑셀로 다운받아서 처리하실 때 데이터가 많아서 6만 라인씩 파일 수십 개로 잘라서 처리를 하다가 데이터를 수정해야 하면 그 파일들을 다 열어서 하나씩 수정하고 저장하던 일을 이제 안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오, 그런 뜻이군요.”

또 다른 고객사의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다 좋은데 새 오피스를 사려면 2억은 들 텐데 너무 비쌉니다.”

내가 말했다. “사장님, 물론 2억은 큰 돈입니다. 하지만 지금 버전의 파워포인트로 고객에게 보여드릴 제안서 만드실 때 디자이너 고용해서 하시잖아요? 조직도나 차트 예쁘게 그리려면 줄 맞추고 하느라고 몇 시간씩 걸립니다. 이번 버전에 새로 나온 스마트아트라는 기능을 쓰면 아마추어가 5분 안에 조직도나 차트를 멋지게 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어 고용하셨던 분들 인건비를 계산해 보면 아마 6개월까지는 손해라도 그 다음부터는 이걸 사서 직원들께서 직접 만드시는게 이익일 겁니다.”

사장님은 계산을 하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다음 주에 견적을 좀 보여주세요.”

고객은 우리 제품의 기능이 뭔지, 뭐가 그리 대단한지 관심이 없다. 고객은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 문제를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해 주려 하는 영업사원, 파트너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프레젠테이션에서 고객인 청중이 중요하듯, 모든 비즈니스에서는 공급자인 내 입장이 아니라 수요자인 고객의 입장에서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제안해야 한다. 고객도 우리가 리드해야 한다.

눈길도 안 주던 가장 어려웠던 청중

11년 전, 증권회사에서 금융상품을 만드는 일을 할 때였다. 전국 150여개 지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순차적으로 회사 연수원에 불러 여러 가지 교육을 받게 했는데 이들을 가르칠 사내강사를 선발했다. 나도 뽑혀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고 교육을 하러 갔다. 연수원에 모인 20대의 젊은 동료직원들은 수업 태도도 좋고 사내강사인 동료들을 선생님 모시듯 깍듯하게 대해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주 힘든 청중을 가르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들은 10년 전에 주식영업 (고객이 주식을 사고 팔게 조언해서 수수료를 버는 영업)을 ​잘 해 회사를 먹여살리던 역전의 용사들이었지만 최근 실적이 부진해 회사에서 떠나보낼까를 고민하다가 마지막 기회로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시킨 분들이었다. 회사에 돈 많이 벌어다주며 대접받다가 부진자 교육에 불려오니 자존심이 많이 상한 이 분들을 만나고 온 동료 사내강사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둘렀다. “전혀 들을 생각도 안 하고 아예 신문을 펴 놓고 눈도 안 마주쳐요. 수업 분위기는 커녕 몇 시간 동안 벽에다 이야기하다 왔다니까요.” “이 수업 들으면 뭐가 달라지냐는 거에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요.” 갔다 온 사람들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수업은 새로운 금융상품 영업을 위한 ‘재정설계’ (personal financial planning, 재무설계라고도 한다) 방법. ​고객 가정의 재무상태를 파악하고 언제쯤 어느 곳에 쓸 자금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적절한 재테크 방법을 제안해 주는 컨설팅 방법이었다. 가기 전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분들이 내 강의를 제대로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고민하다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청중에게 재정설계 방법을 몇 시간 가르치는 것보다는, 교육 잘 받고 노력하면 회사에서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밤이 되어 몇 시간 남지도 않았지만 아마존(Amazon)에 들어가 PB(Private Banker), FC (Financial Consultant) 커리어에 대한 전자책 (E-Book)을 사서 읽었다. 책이 두껍지도 않았고 다급하니 영어인데도 눈에 팍팍 들어와 필요한 내용을 2-3시간 안에 알아냈다. 새벽까지 자료를 만들고 교육장에 도착했다.

듣던 대로 인사를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정장을 입고 깔끔하게 다니시던 분들이 동네 아저씨 차림으로 다들 너무 편하게 입고 오셔서 신문을 완전히 펴서 사각사각 념겨가며 읽고 있다. 늘 그렇지만 ‘왜 내가 네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오신 여러분들은 저보다 10살은 많은 형님들입니다. 저보다 증권회사 경력도 훨씬 많으시고, 영업 잘 하시던 분들인데 제가 형님들한테 무슨 영업 스킬을 가르치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걱정하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좀 덜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커리어에 대해서는 제가 공부를 해서 좀 더 알고 있으니 그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난 상관없어’ 하던 아저씨들이 신문을 일제히 덮고 나를 쳐다보는게 아닌가. ‘이제 됐다.’ 나는 형님들과 connect되었다. 주어진 4시간 중 3시간 동안, 뭘 공부하고 준비하면 은행에서, 보험에서, 증권에서 재무 컨설팅을 하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는지를 알려드리고 나머지 1시간 동안만 원래 하기로 했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4시간 내내 정말 집중해서 잘 들었던 그분들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만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회사 후배인데.’ 가슴이 뭉클하고 내가 참 의미있는 일을 했구나 라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가장 어려웠던 청중이었는데.

교육 후 모두가 ​회사에 남지는 못했지만 반 정도의 분들이 다시 영업 전선으로 돌아가 일하게 되었고 이 중 10%는 영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잊지 못할 경험을 한 후, 난 교안에 없어도 내 청중들이 듣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되는 이야기를 내 스타일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해준다. 내가 지겨우니 매번 다르게.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습니까?”

면접에서든, 자기소개서에서든 “왜 여기 오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본다. 면접에서는 직접 물어보고, 자기소개서에서는 ‘지원동기’라는 항목에서 물어본다.

최고의 회사나 학교에서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하버드에 지원하는 사람에게 “왜 하버드에 오려고 하니?”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학교니까 오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될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선택되지 않는다. “세상에 큰 영향을 주는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은데, 그런 리더를 길러내는 학교가 하버드이므로 여기 와서 공부해야겠습니다.” 정도의 이야기를 해야 ‘음, 그렇지. 우리 학교는 세계적인 리더를 길러내는 학교니까.’ 하면서 뽑아줄 만한지를 살펴본다.

회사도 그렇다. “왜 여기 오려고 합니까?”라는 질문에 “작년 매출이 얼마고, 수익성이 얼마나 좋으며 앞으로 유망한 회사라 지원했습니다”라거나 “복지혜택이 좋아서 지원했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기적인 사람이군. 자기 좋아지는 이야기만 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오고 싶다고 말하려면, 어떤 가치를 가져다 줄지, 자기가 오면 회사가 어떻게 좋아질 건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와야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왜냐 하면 나는 그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노력해야 가능한지도 안다고’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자기 이야기를 하지 말고, 듣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처럼, 회사가 자신을 선택하게 하려면, 회사를 통해 자기가 좋아지는 이야기는 쏙 빼고, 자신을 통해 회사와, 나를 뽑아주는 이 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원하는 이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뭘 잘 하고, 뭘 못하고 있는지, 요즘 관심사가 뭔지, 사람들은 어떤 상태인지 등 회사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빠삭하게 공부하고 알아내야 한다.

이제 누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OO한 일을 좋아하고 이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려 한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있지만, 나와 믿는 바가 같고 가장 큰 규모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이 곳에 와서 회사를 10배 성장시키면서 나도 같이 커야겠다.”라고 말하라. 진심으로.

“고객을 버려라”

‘고객은 돈주는 사람이니 어떤 고객이든 왕이라 생각하고 잘 모셔야 한다.’

정말 그럴까?

리소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을 하게 되니, 스몰 비즈니스를 잘 하는 방법에 관심이 생겼다. 많은 스타트업들도 스몰 비즈니스로 시작하는데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리소스가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중요해지고 정말 가장 중요한 타겟 고객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늘 듣는 ‘내가 serve하고 있는 고객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정하라’는 이야기, 이건 다 안다.

그런데, ‘내가 서비스하고 싶은 고객은 누구인가?’라고 생각해 보면 안 되나? 그런데 그건 고객을 가려 받을 수 있을 때 이야기고, 그러기 전에는 서비스하고 싶은 고객이 아니라 서비스할 수 있는 고객들을 다 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된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고수들의 책을 보면 한결같이 그게 아니란다. 여러 가지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제일 잘 하는 것 하나를 명확히 드러내야 하고, 고객도 같이 일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더 생기는, 나와 맞는 고객을 정하고 그렇지 않은 고객은 ‘버려야’ 한단다. 그래야 좋은 성과가 나오고 그 고객이 추가 비즈니스 기회를 주거나 추천을 해 준다는 것이다. 나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은데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받은 고객들과는 결국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재구매나 추천은 커녕, 자기와 궁합이 맞는 고객과 일할 기회마저 놓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 하니 내가 어떤 고객하고 일할 때 가장 좋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돈을 많이 빨리 주는 고객일 수도 있지만, 돈 아닌 다른 요소도 중요하다. 내 가치를 알아보고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고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되는, 일해 주고 나면 기분이 좋고 기운이 나는 고객. 조건이 좀 안 좋아도 이런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해주면 좋은 기회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니 돈이 된다 해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고객도 기억난다.

고수들의 말을 믿고 용기를 내어 서로 도움이 되고 좋은 경험을 하게 되는 고객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얼마나 겸손해야 할까? – 스피커의 권위가 필요할 때

3년 전, 처음으로 KAIST MBA에 특강을 부탁받아갔다. 최고의 MBA 프로그램에서 초대를 해 주신거라 으쓱하기도 했고 후배들 (난 MBA는 아니고 공학 석사를 했다)을 만나 내가 했던 경험을 나눠주며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생각을 하니 신나기도 했다. 주제는 MBA 학생들이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커리어 전환’. 내 전공 아닌가. 해 줄 이야기도 많고 자료도 꼼꼼히 만들었다.

어떤 학생들일까 잔뜩 기대를 품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MBA Director 선생님의 내 소개가 끝나고 인사를 했는데도 뒤에 앉아 있는 두 줄 정도의 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거의 뒤로 누워 있는게 아닌가. 얼핏 보니 나이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음. 사회경험을 할 만큼 한 사람들이 좀 예의가 없군. 그래도 선생님이 왔는데,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청중들을 만나봤지만 ‘우리도 알만큼 알아. 근데 넌 뭐냐?’ 하는 사람들과 ‘다 귀찮아. 듣기도 싫어. 나 할 수 없이 여기 와 있는 거야.’ 라며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두 번째 모든 것이 귀찮아진 분들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학생들은 첫번째였다. 이때 잘 해야 한다. 처음에 기에서 밀리면 강의를 제대로 안 들으니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되어 효과가 없다.

‘이것들 봐라, 좀 충격을 줘야겠네.’라고 생각하고, “여러분, 저는 여러분 선배입니다. 여러분 카이스트 MBA 나오면 다들 어셔옵쇼 하면서 문 열어줄 것 같죠?” 후배들이 집중한다. “웃기지 마. 그런 건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 아무 것도 개런티되는 건 없어.”라며 학생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누워있던 학생들이 팔짱을 풀고 다 똑바로 앉는다. ‘음, 이제 수업해도 되겠군.’

난 모든 강의에서 내 소개를 좀 거창하게 한다. 교수를 하는 친한 친구가 10년도 전에 “강의할 때는 선생님의 권위를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을 기억하고 다른 교수님들의 케이스도 몇 번 보고서 나도 그렇게 한다. 내가 일했던 회사들, 했던 일들, 내가 성공시킨 사람들이 합격한 최고의 회사들, 학교들의 리스트, 내가 강의하는 유명 무대의 사진들, 신문에 나온 사진, 미국 가서 CEO한테 상받은 사진 등을 보여준다. 시간이 5분 더 걸려도 청중들이 집중해서 얻는 효과에 비하면 투자할 만하다. 내 소개를 듣고 나면 다들 눈을 반짝거리며 집중한다. 한 번에 못 알아듣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야기도 해 준다. “자, 이제 이 선생님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겠다 생각이 들죠?” “예!” “여러분, 난 여러분들을 위해 정말 많이 준비했고 오늘 많은 걸 가르쳐 줄 거에요. 오늘 여기 와서 날 만난 걸 땡잡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잘 들으세요.” 이렇게 하고 수업을 하면 집중도가 좋아서 나도 신나고 더 가르쳐주게 되고 학생들은 더 많이 배우고 강의 평가가 잘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카이스트 MBA 수업도 처음 분위기를 잘 잡고 하니 수업 내내 잘 듣고 날카로운 질문도 많이 나왔다. 질문을 받을 때도 ‘다 덤벼’ 하는 마음으로 “Any questions?”라고 묻고 나온 질문에는 똑바로 쳐다보고 자신있게 대답해줬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해 전체 외부 강의 중 1등을 했단다. 그 이후로 매학기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커리어 전환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간다. 재미있게도 그 이후로 팔짱끼고 누워있는 학생들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요즘은 그보다 훨씬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분들이 겸손의 미덕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전문성을 보여주고 권위를 세워 집중을 받아야 할 시점에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스스로 알겠거니 하고 말을 아낀다. 청중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그냥 누가 왔나보다 생각하고 잘 듣지 않는다. 대단한 분을 어렵게 모셔와놓고 제대로 안 들으니 효과가 반감되고, 그 분은 이 청중들과의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이 학교[혹은 회사]에 다시 오지 않는다. 서로 손해다.

겸손할 때 겸손하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알려야 할 때는 확실하게 알려주자.